일요일인 지난 16일 오후 7시30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한 사무실. 집기들이 둘러싼 가운데 교사인듯한 사람이 테이블 주위로 앉은 고교생 6명에게 영문 복사뭉치를 나눠주고 있었다. 학생들이 영문을 다 읽을 때 쯤 안쪽에서 아줌마 4명이 나와 비어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강의는 영문 번역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의미풀이와 현실비교. 수능시험 과목으로 치자면 단순한 영어수업이 아니라 언어영역, 사회탐구, 논술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학생들보다 아줌마들의 눈빛이 더 빛났다.
이 특이한 공부방의 강사는 일신학원 윤일현 진학지도실장. 지난해 이웃과 품앗이 과외(뜻이 맞는 학부모들끼리 돌아가면서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는 무료과외)에서 시작했다가 겨울방학 들어 확대된 것. 아줌마 청강생들은 학생들의 엄마. 간식이나 대 주러 왔다가 첫 수업에서 흥미를 느껴 자녀와 함께 공부방 학생이 됐다.
"강의를 듣다 보면 아줌마 수준에서 벗어나 학생들과 같은 수준이 되는 기분" "늘상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만 지켜보다 함께 앉으니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 휴식시간에 만난 엄마들은 들떠 있었다.
엄마들이 내세우는 공부방의 가장 큰 장점은 공부에 대해 자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꺼리'가 생긴다는 사실.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자녀와 공유하면서 가정의 활력도 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도 "내 공부를 엄마가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4시간 가까이 수업이 진행됐지만 어린 학생, 나이든 학생 누구 하나도 지겨워하지 않았다. 윤일현씨의 조언. "엄마들도 누구든 공부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녀들에게 열심히 공부를 시키고 좋은 대학에 보내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지요. 하지만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성격을 가진 자녀들을 그런 소극적인 자세로 대해서는 뜻대로 안 됩니다. 단 한 가지라도 자녀와 공유해 보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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