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낙천.낙선운동의 방법

총선시민연대에서 16대 총선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한 데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사태는 단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양대 노총 등 다른 단체들의 낙천 및 낙선운동이 이어질 예정이어서 총선에 미치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선거철마다 부는 웬만한 바람은 맥을 못 출만큼 초대형 태풍의 위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시민연대의 충정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면서 낙천.낙선운동이 선거문화와 정치풍토를 혁신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집단 의사결정시에 나타나는 두 가지 부정적 결과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집단은 개인보다 더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멤버들이 다수를 이루고 토론을 주도하면 보수성향을 지닌 소수는 입을 다물게 되어 결국 집단의 결정은 멤버들의 평균적 성향보다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극단화된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총선시민연대 집행부에서 명단을 일단 70명으로 압축한 다음, 100인 유권자위원들과 토론을 통해 50명선으로 축소하려고 계획했으나 토론에서 강경발언이 잇따라 인원을 거의 줄이지 못한 채 67명으로 최종 확정하였다고 한다. 인원수가 무슨 문제냐고 따질 수도 있겠으나 인원이 늘어날수록 결격사유가 있지만 정치생명을 박탈할 정도는 아닌 사람이 포함될 가능성은 커진다. 부적격자를 누락시킨 경우보다 적격자를 포함시킨 경우가 더 심각한 오류가 된다. 시민연대의 2차 명단선정이나 다른 단체의 심의과정에도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볼 때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인원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다른 하나는 집단 결정은 완전무결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공천 부적격자 명단 역시 다수 위원들의 철저한 심의를 거쳐 선정되므로 합리적이며,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집단도 착오를 범할 수 있으며, 집단이 완전무결의 맹신에 빠지면 반대의견은 묵살되고, 독단에 흐르게 된다. 케네디 정권에서 자행한 쿠바 픽스만 침공이나 6.25 당시 만주 진격을 건의한 맥아더를 해임한 트루먼의 결정은 국가의 최고 브레인들이 모여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어처구니없는 큰 실수였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낙천대상자는 도저히 국정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되는 인사들로 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기존의 공천반대자 명단과 함께 각 단체마다 앞다투어 명단을 내놓을 예정인데다 항상 그랬듯이 악의에 찬 정체불명의 괴명단까지 섞여 각종 명단이 난무하는 형국이 될 때 누가 덕을 볼 것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명단 저 명단에 빠짐없이 낀 사람이야 명단이 하나이든 열이든 상관없이 타격을 받겠지만 일부 명단에만 이름이 올라있는 인사의 경우 이름이 제외된 명단이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소한 과오까지 모조리 들춰내 공개할 때 지역에 따라서는 흠은 없으나 능력도 없는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는 결과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리스트'가 많아질수록 파괴력은 감소하고, 선거판은 혼탁해질 우려가 있다.

끝으로, 낙선운동은 낙천명단 공개보다 더욱 신중하게 전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낙천명단 공개는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순기능이 큰 반면, 낙선운동은 유권자로 하여금 시민단체의 가치판단에 동조할 것을 강요하는 셈이어서 유권자의 고유권한을 침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총선시민연대의 평가기준은 공과(功過)를 함께 고려하기보다는 과오에 초점을 두었다. 한때 실수를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마저 단죄해야 할지는 시민단체가 일방적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공천반대자 명단을 참고하되 선택은 유권자 스스로 내리는 재미(?)를 보장해줘야 한다. 유권자의 권리는 시민단체의 결정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낙선운동은 자제됨이 좋겠고, 꼭 필요하다면 부적격의 경중을 가려서 선별적으로 행하는 것도 고려함직하다.

대구효성가톨릭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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