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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향토출신 재일동포들(18)-오영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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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서는 김치의 국제규격을 둘러싸고 한일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의 매스컴들은 이를 '김치전쟁'이라며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도 일본인들 사이에 김치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젊은 여성들은 다이어트식이라며 즐겨 찾고 매운맛에 대한 기호도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김치의 원조가 자기나라'라고 믿고 있는 일본인이 있을 정도로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일본 국내에서 만드는 김치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고 있지만 도쿄시내에 본사가 있는 주식회사 영명(永明)은 전통 발효식 한국김치로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 회사의 김치는 게이오, 이세탄, 마쓰자카야, 소고, 도부 등 일본의 대형 8개 백화점에 진출했다. 또한 고객들에게 김치공장을 개방하고 김치박물관도 개설, 종주국인 한국김치의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에서 김치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기업인으로 이 회사를 이끌며 김치전쟁의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주인공은 오영석(吳永錫.50)사장이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新宿)의 쇼쿠안(職安)거리는 80년대 들어 대거 일본에 진출한 이른바 '신한국인'들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한 한국인 거리이다. 한국의 식문화를 일본에 옮기는데 성공한 신한국인인 오씨는 지금부터 18년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향인 대구를 떠나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도쿄의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이 학교에서 패션유통을 공부한 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쿄 게이오백화점에 취직했다. 여기서 는 일본인 직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백화점내에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다. 7년간 근무하면서 지하식품가에 한국식품부를 설치, 김치를 비롯한 한국식품을 상설 판매토록 하는 등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해냈다.

그는 95년 2월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표를 던졌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브랜드를 직접 일본백화점에 납품하는 패션 컨설팅과 대규모 한국물산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 류향희씨가 경영하는 김치공장이 순조롭게 운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도쿄 요츠야(四谷)에 문을 열고 있는 김치공장 '처가방'에서 만난 오씨는 "이곳에 김치박물관을 꾸미고 일본인들이 김치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주방을 개방하고 있다"며 김치 홍보를 위해 2층에도 한국전통 가정요리점을 냈다. 이곳에서는 김치 판매에 그치지 않고 김치의 역사와 제조과정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오씨는 거의 모든 김치 재료들을 한국에서 들여 온 것을 사용한다. 한국맛을 제대로 내는 게 곧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오씨 부부는 일본의 TV 방송 등에서의 김치 강좌를 통해 한국의 맛을 알리는 일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전통 한국식 김치 개발 홍보전략에 힘입어 주식회사 영명의 매출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첫해인 93년에 4천만엔에 불과했던 매출이 94년 1억엔, 95년 1억7천만엔, 96년 2억3천만엔, 97년 3억엔으로 불어났으며 최근에는 4억5천만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식품을 밥상에 올리고 한국에서 만든 옷을 입는 일본인은 최소한 한국에 대한 편견은 없을 것"이라는 그는 일본 유통업계에서 배운 경험을 살려 일본업체와 겨루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일본의 유명백화점에 빠짐없이 한국식품코너와 패션코너를 설치하고 김치를 비롯한 한국식품을 상설판매토록 하려한다.

오씨는 식품관련 사업을 하면서도 한국패션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다. 지난 97년에는 기타규슈(北九州)시에서 '코리아 패션 드림'이라는 행사를 주관했다. 이틀간 열린 행사에는 일본 전역에서 도소매점, 백화점 바이어 200여명이 참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패션의 일본 진출에 대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일본인과 비슷한 체형을 갖고 있어 사이즈면에서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보다 장점을 갖고 있다"며 해외비즈니스의 새로운 전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앞으로는 도쿄와 오사카에서도 패션 행사를 갖고 출품업체들이 일본지역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주식회사 영명에는 직원 50여명 가운데 30여명이 한국유학생들이다. 학비를 벌기 위한 일자리를 찾는 학국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사회로 진출한 젊은이들끼리 만든 '영명회'라는 장학회도 운영되고 있다. 그도 늦깎이 유학을 와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3, 4시간 밖에 못자며 젊음을 불태웠던 지난날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지난해 장녀를 서울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9층 건물을 매입했다. 앞으로 도쿄 도심 한가운데 한국요리전문학교를 개교할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김치 국제규격 갈등에 대해 "과거에는 총칼로 전쟁했으나 지금은 문화로 싸운다. 나는 음식문화를 갖고 가장 최전방에 서 있다"는 그의 성공 철학은 자신의 장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라며 이것이 장인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문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김치박물관 설립도 지금은 상품만 파는 시대가 아니라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어떤 스토리를 만들고 문화를 전승시킨다는 생각없이는 일본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상품을 선전하기보다 우선 '기무치'를 정확히 '김치'로 발음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는 오씨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朴淳國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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