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 전 대통령은 한반도 보다 조금 작은(18.5만㎢) 영토에 1천500여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 대통령이면서도 중동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강경파 지도자였다. 지금은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들이 진행 중인 단계여서, 그가 없어진 마당에 누가 그걸 결정할 수 있을지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중동문제 영향=중동 평화협상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종래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서 골란고원 전면 반환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시리아 내부는 물론 전체 아랍권의 존경을 받아왔다. 때문에 그 외의 어느 후계자도 유화 정책을 채택하기 어려울 전망.
이스라엘과 미국은 일단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상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예 회담 재개 자체가 무산되리라는 어두운 확신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도 최소 몇달은 회담이 지연될 것으로 내다봤다.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강력한 영향력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 그가 없어진 이상 레바논이 홀로서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시리아 내부 상황=일단은 아들 바샤르에게 후계권이 돌아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는 어린데다 군부에 대한 영향력이 전혀 없는 상태. 또 소수파인 시아파 소속이면서도 아버지는 다수파 수니파를 승복시켜 왔으나, 바샤르 역시 그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자국내 의대를 졸업한 뒤 안과의사로서 영국에 유학갔다가 형이 죽자 1994년에 불려 귀국했다. 그 후 후계자 양성 코스로 사관학교에 입교, 탱크대대 지휘관을 시작으로 지난해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컴퓨터·정보통신 기술의 국내 보급에 더 관심이 많고, 2년 전에는 시리아 최초의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했다. 또 젊은 지도자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반부패 운동도 주도, 전 총리의 경질·자살에는 그의 역할이 컸다는 관측도 있다.
외신정리=朴鍾奉기자
paxkorea@imaeil.com
▨아사드 시절 주요 일지
△70년 11 쿠데타 성공
△71년 3 대통령 취임
△73년 10 이스라엘에 뺏긴(67년) 영토 회복 위해 시나이반도·골란고원 기습공격△74년 6 닉슨 미국 대통령 시리아 방문, 외교관계 복원
△76년 4 레바논 사태 개입
△77년 12 이집트와 단교(사다트 이스라엘 방문 이유)
△80년 10 이라크와 단교(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 지지 탓)
△83년 6 아라파트 PLO 의장 추방(아사드와 불화 이유)
△83년 11 아사드 심장병 발병, 혼수 상태 경험
△90년 8 미국편 들어 다국적군 합류(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91년 5 레바논 후견인 역할 공식 확보(우호협정 체결)
△91년 10 이스라엘과의 평화회담 동의(마드리드 협정)
△94년 10 클린턴 미국 대통령 시리아 방문
△올해 3 아사드, 클린턴과 회동(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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