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가치관 혼란'은 어쩌나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외세에 의해 그어진 38선때문에 우리에겐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 뿐이랴. 장래에는 대중의 기아(飢餓)가 있고 가정의 이산(離散)이 있고 동족의 상잔(相殘)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미.소 양국에 의해 그리고 현실론에 쫓아 남.북 양쪽에서 각각 단독선거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은 조국의 영원한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이에 우리가 갈길은 오직 민족자결정신에 의해 우리끼리 단결하고 노력하며 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그 길뿐이므로 그를 논의하려 나는 뭇반대를 뿌리치고 38선을 넘어 온 것이다"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이 이승만 박사가 추진하던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며 김일성 등 민족 각 진영 대표들이 개최하는 '남북협상'에 참석하려고 평양에 도착해 발표한 성명서 요지이다.

##'통일조국'기미 엿보여

그로부터 만52년만에 지금 평양에선 '남북공동선언문'이 발표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남쪽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민족통일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합의문'에 서명한 것이다. 실로 만감이 교차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은 장담 못하지만 한달전 아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분단 조국의 한 획을 긋는 사변(事變)임엔 틀림이 없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조국의 허리가 동강난지 55년만에 백범이 그렇게 소원하던 '통일조국'의 기미가 희미하게나마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55년동안 백범이 예언한 대로 6.25의 민족상잔도 치렀고 혈육의 모진 이별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자주(自主)가 없기도 했고 민주(民主)가 독재로 대체되기도 했으며 그 지긋지긋한 굶주림은 아직 저 북녘에선 청산되지 못한채 세월만 허송했다. 지근(至近)의 거리를 너무나 멀게 만들어 놓았다가 비행기로 1시간 남짓 단축하는데 치른 희생의 대가가 너무나 엄청났던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새삼 백범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오늘 그 평양의 사건에 우리들은 아직 당혹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아니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이 '김정일'의 시원시원한 '액션'처럼 너무나 쉽게 다가온터라 우리는 긴가민가하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김 대통령 일행이 돌아와 그 보따리를 차근차근 푸는걸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당장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해야될지 그야말로 엉거주춤할 따름이다. 피도 눈물도 부모형제도 없이 그저 '동무'라고 부르는 그들을 우리는 지금까지 '공산도당'이라 했다. 60만명이 열광하는 평양인민들의 눈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남조선 괴뢰'요,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 선입견으로 양쪽 지도자가 두손 잡고 '대통령' '국방위원장'이라 부르며 연출하는 장면을 보는것 그 자체가 아직은 눈에 영 설고 오히려 어색하게 느끼는 건 그들이나 우리나 매 한가지 일 것이다. 김대통령 자신도 '붉은 군대'의 의장대를 사열하고 그 분열하는 대열앞에 서긴 했지만 '김정일 동지'의 거수 경례자세옆에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손을 어떻게 하지도 못한채 어색해 했을건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가까운 장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로 왔다고 했을때 그들이 했던대로 박수야 치겠지만 '북의 지도자'로 맘속 우러나는 환영을 할지는 아직도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일 마스코트'인기

더욱이 주적(主敵)의 개념으로 그들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훈련에 익숙해져만 있던 군장병들은 정말이지 난감할 것이다. 반공교육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또 그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인공기'를 내거는 대학들이 줄잇고 '김정일 마스코트'가 벌써 인기라는데 우리의 국가보안법상 어디까지가 걸리는 일이고 괜찮은 일인지 참으로 헷갈리는게 너무나 많은게 현실이다. '김정일 위원장 만세'라고 해도 되는지도 알쏭달쏭하다. 그뿐인가. 주한미군의 존재는 자주통일개념을 도입하면 도저히 양립될 수 없는 이치에 해당된다. 상반된 이념속에서 보낸 반세기는 이렇게 동족을 동족으로 대하기가 거북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현정부는 우선 이 문제부터 국민들이 편하고 알기쉽게 설득력 있는 방도를 지혜롭게 궁리해내야 한다. 이렇게 헷갈리는 가치관의 혼란상태를 오래 방치하면 결국 성원이 절대적이어야할 국민들은 '지도부 잔치'의 단순한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