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악상황 치닫는 지역업계 자금난

기업을 꾸려나갈 자금이 없다. 중견기업이나 영세기업이나 모두 자금 마련을 못해 아우성이다. 신용한도가 축소되고 금융권은 신규대출은 물론이고 대출 연장에 꿈쩍도 안한다. 회사채조차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이 없다.

이런 여파로 대구·경북에서는 부도업체가 급증하고 있다. 6월1~20일까지 부도율은 0.95%로 전월 0.23%보다 4배이상 늘었다. 지난달 부도업체 수는 50개로 4월의 32개보다 56%나 증가했다.

대구 서대구공단에서 연간 500만달러 정도의 직물을 수출하고 있는 ㅇ사 김사장. 결제일인 월말이 다가오면서 피가 마른다. 주거래은행이 평소에는 늦춰주던 연장을 지난달에는 오히려 2시간 정도 앞당기는 바람에 친구돈까지 끌어 들였다. 이번달에 돌아오는 7천만원의 어음을 어떻게 막을까. 리스로 구입한 에어제트룸 원리금 상환일도 한달 앞이다.

또 다른 업체 대표 ㄱ씨는 "덤핑으로 물량을 처리해 보지만 해외바이어들도 국내업체들의 자금 사정을 아는 까닭에 저울질만 하고 선뜻 응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달성공단의 모 생산기계업체. 2년동안 거래해오던 모캐피털사로부터 한달전 신용한도 축소 조치를 당했다. 이 업체 대표는 "만기가 된 기업어음을 회수할 때 그만큼의 다른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금융권의 관례였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워크아웃 상태인 중견 건설업체 이사인 ㅇ씨. 회사를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가 없다. 대출보증을 섰기 때문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 처지. 그래도 보증을 서고도 월급을 못받는 동종업계에 근무하는 친구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역 기업 자금난은 수도권과는 다른 양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자금난은 주로 삼성·LG·SK 등 우량 재벌 계열사를 제외한 재벌급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안되는 문제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자금시장을 안정시키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실제로 산업·기업은행 등 12개 은행장들은 24일 긴급회동을 갖고 회사채 투자용 채권펀드를 조성, 이번주부터 회사채를 본격 매입키로 했다.

반면 지역 기업들의 자금난은 원초적이다. 대구염색공단 모 섬유업체 경리이사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방법은 주식판매, 은행대출, 회사채 및 CP(기업어음) 발행 등인데 지역에서는 이런 방법들이 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지역에서 상장기업 정도면 어렵지 않게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으나 현재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기업은 몇 안된다는 것. 회사채를 발행해도 서울처럼 은행들이 조성한 '투자용 채권펀드'에서 사줄 수 있는 기업은 없다기업 자금 담당자들은 "CP도 전에는 3개월, 6개월 짜리를 발행했지만 요즘은 보름단위로 발행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됐다"고 아우성이다.

그중에서도 지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중견기업들의 어려움은 특히 심각하다. 모유통업체 자금팀장은 "현재 지역 중견기업들중 자금을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은행은 통상 대출시 6등급으로 기업을 분류하는데 상위 3등급 이내에 드는 업체가 없다는 것.

금융기관은 기업의 재무상태나 영업실적이 좋더라도 담보없이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IMF이후 경영여건이 훨씬 좋아져 CP조차 발행않는 성서공단의 한 기업체 자금담당 임원은 "무작정 담보부터 요구하는 금융권의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기업 자금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은행에서 돈 쓸 것을 제의받은 한 섬유업체 대표도 "막상 5억원의 운영자금을 빌리려고 하니까 담보를 요구해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이는 대구시의 2000년 상반기 중소기업 육성자금 대출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는 1천465억원의 자금을 조성, 이중 5월말 현재 1천474억원을 선정, 금융기관에 대출해줄 것을 추천했으나 대출이 이뤄진 것은 선정요청자금의 55%에 불과했다. 이 자금은 대구시가 3, 4%의 이자를 보전해주기 때문에 받기만 하면 기업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금융권의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배정된 자금도 그림의 떡이다.

崔正岩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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