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은행파업이 남긴 것

사상 초유의 7.11 은행권 파업이 하루만에 수습됨으로써 정부, 금융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이번 파업에서 정부는 금융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로 파업 조기종료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금융노조는 파업돌입을 관철한데다 은행 통합시 인력.조직 감축 최소화 등의 실리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승리한 '윈-윈게임'이 됐다.

그러나 '집단행동에 밀리는 정부, 집단이기주의에 충실한 노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으며 특히 정부 정책실패로 인한 부실을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지적도 받게 됐다.

▲무엇이 대타협을 이끌어냈나=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과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이 11일 수차례 협상을 거쳐 결국 타협에 성공한 것은 노-정 양측 모두 파업 장기화에는 극도의 부담을 느낀 탓이다.

정부로선 지난달의 의료대란에 이어 또다시 금융파업이 지속될 경우 악화될 국민여론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파업 장기화로 수출입업무, 외환업무 등이 계속 불능에 빠질 경우 대외 신인도가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도 걱정해야 했다.

금융노조로선 하루나마 총파업을 강행함으로써 일단 은행노조도 파업할 수 있다는 강한 이미지를 주었고 노조가 정부 정책을 이슈로 제기해 성과물을 얻었으므로 필요한 실리를 챙기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당수 은행 노조 및 노조원들의 이탈로 실제로 '은행권 총파업'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이나마 파업전선이 급속 와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노-정은 무엇을 얻었나=정부는 노조의 요구조건을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금융지주회사 도입, 예금자보호한도 축소 등 금융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지켜내 향후 구조조정을 큰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내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지주회사로 묶는다는 당초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예금자보호한도 축소방침을 예정대로 내년에 실시해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촉진시킨다는 복안도 차질이 없게 됐다.

금융노조는 무엇보다 은행 합병시 인원.조직 감축을 최소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산하 은행 노조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정리해고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시켰다. 관치금융 근절을 명문화하고 은행합병을 시장 자율에 맡기도록 확인받은 것도 성과다.

종금사 지원자금 4조원의 상환약속, 러시아에 제공한 경협차관 중 미상환분의 정부 책임 등 은행 부실의 상당부분을 정부가 부담하기로 한 것도 상당한 실리다.▲대타협이 갖는 함정=정부가 금융 구조조정의 대원칙은 지켜냈다고 하지만 이날 대타협 합의사항은 향후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장애물로 작용할 전망이다.

노조가 주장해온 관치에 의한 부실요구 해소에 대해 정부가 과감하게 털어준다고 약속함에 따라 공적 자금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는 집단행동에 대해 말로써만 엄단을 외칠 뿐 사실은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난 의사폐업 사태에 이어 다시 보여주었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금융노조 역시 집단 이익을 위해 국가경제 마비까지 담보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도덕적 타격을 받았다. 파업 이탈 노조가 속출함으로써 산별노조로서의 위상이 다소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李相勳기자 azzz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