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시대가 무르익어가던 9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디지털변화가 시작되었다. 95년에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부지역(14주 29%) 인구가 동부지역(13주 25%) 인구를 눌렀다. 96년은 전미국 253개 주요지역 수출실적에서 95년 1위 였던 동부의 디트로이트를 누르고 서부의 산호세(실리콘밸리)가 1위를 차지했다. 나라의 중심이었던 200여년 전통의 동부의 영광을 서부가 눌러 버린 것이다.
인도는 미국 다음의 세계 제2위의 소프트웨어 강국을 꿈꾸는 나라다. 지난번 2000년 연도표기문제(Y2K)때 해외로부터 25억달러나 되는 일거리를 맡을 정도로 알아주는 나라다. 2008년에는 생산액 857억달러에 소프트기술자 220만명을 가진 정보대국이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를 담당할 지역이 수도 뉴델리가 아닌 방갈로르, 하이드라바드 지방도시라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디지털의 특성이 가져온 중앙에 대한 지방의 도전이자 반란인 것이다. 물론 연방제로 지방분권이 잘되어 있는 이들 나라와 중앙집권제인 우리와는 여건이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은 대학·연구소 등 두뇌가 집적되어 있는 곳에서 소프트산업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라고 지방이 중앙보다 우위에 서보는 '천지개벽'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디지털의 배신
산업화 시대는 정보의 독점시대이자 관(官)의 시대였고 도시화시대 였다. 따라서 서울집중이나 지역간 불균형 성장은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는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정보가 공유되는데다 민(民)의 시대이고 지식경제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상 지역간 균형성장이 가능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다. 디지털의 배신인 것이다. 수도권 집중이 산업화시대보다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보화시대 산업인 벤처기업의 수도권 분포는 81.3%다. 그런데 산업화시대 산업인 일반기업을 포함한 분포는 72.1%다. 인구도 97년 IMF위기로 한때 빠져나갔다가 벤처붐을 타고 98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해서 99년에는 통계작성이후 최대의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들었다.
고급 두뇌가 몰려있는 곳 그곳이 디지털기업 환경에 좋다는 소위 '집적의 효과''집적의 이익'때문이다. 한국의 천지개벽의 꿈은 정보화시대에도 중앙의 방관으로 실패한 것이다.
◈지방자치의 허무
통계수치로만 따진다면 지방자치는 왜 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잘살라고 지방자치 했는데 더 못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발전을 가늠할 하나의 지표인 지역총생산(GRDP)하나만 봐도 그렇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95년이후 지역총생산증가율이 수도권(22%)은 전국평균(21%)을 넘어서는 데 지방은 대부분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지방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도 95년 63.5%에서 올해엔 59.4%로 오히려 떨어졌다.
게다가 앞서의 지적처럼 정보화라는 시대적 흐름마저 지방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올바른 리더십과 정책을 폈다고 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인데…. 그리고 야당시절 지방등권론까지 외쳤던 대통령은 지역차별금지법을 만드는 등 의욕은 보이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구체화 하지는 않고 있다.
이를 보다못한 대구·부산·광주등 8개 시·도 기획관리실장들은 11일 부산시청에 모여 영·호남 국토균형발전추진협의회를 결성했다. 행정권한 이양 등 지방분권운동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주지 않으면 가져오는 지방"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지방"이 되겠다는 소위 '지방의 반란'을 도모한 것이다. "모든 정치는 지방으로 통한다"는 미국의 담론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고" 있다. 이의 극복을 위한 지방의 논리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지방자치의 완성을 위한 중대한 발걸음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발전이다. 이를 위한 수단의 하나가 두뇌유치이다. 앞서의 미국과 인도도 두뇌로 지방경제를 일으킨 것 아닌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하이테크 이민정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독일은 정보통신기술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모자라는 기술인력을 유치하기로 했다. 10%대의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슈뢰더 총리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다가오는 지식경제시대, 디지털시대에는 두뇌가 없다면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자치단체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두뇌와 연구소의 유치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모처럼 시도된 '지방의 반란'이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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