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지난 85년부터 90년까지 2차례의 예비접촉과 10차례의 준비접촉을 가지면서 양측의 입법기관인 대한민국 국회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간 남북 국회회담을 준비해왔다.
남북 국회간 접촉은 지난 85년4월 북한의 양형섭(楊亨燮)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남북 불가침 공동선언 문제 협의를 위한 국회회담 개최를 제의함에 따라 시작됐다.같은 해 6월 우리 국회는 당시 이재형(李載灐) 국회의장 명의로 회담 제의를 수락하고, 예비접촉을 판문점에서 가질 것을 제의했으며, 같은 해 7월23일 양측에서 5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첫 예비접촉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해 9월까지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예비접촉에서 북측은 '불가침 공동선언' 문제를 우선 협의하자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반면, 우리측은 불가침 문제는 정부 당국간 회담에서 다뤄야 한다며 맞서다 다음해인 86년 1월 북한이 팀스피리트훈련을 문제삼아 대화를 중단해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본격적인 남북 국회회담 접촉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88년 7월 우리 국회가 당시 김재순(金在淳) 국회의장 명의로 '서울올림픽대회 북한참가 촉구 결의문'을 담은 서한을 북측에 발송함으로써 이뤄지게 됐다.
북측은 이에 남북국회연석회의를 개최, 서울올림픽 북한 초청 문제와 올림픽 공동주최안을 협의하자고 화답하며 접촉에 응해왔고, 이후 88년 8월부터 90년 1월까지 10차례 판문점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서 준비접촉이 이뤄졌다.
올림픽 개최전까지 열린 4차례 준비접촉에서 남북 불가침 공동선언 문제를 의제에 포함하고 회의 형식도 남북 연석회의로 주장하는 북한측과 올림픽 남북 참가를 우선 논의하자는 우리측 사이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88년 10월 열린 5차 준비접촉부터는 자연스럽게 올림픽 문제가 의제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북측은 남북 불가침 공동선언문제를, 우리측은 남북적십자 회담 재개를 포함한 남북 인적·물적교류 협력문제를 우선 주장했다.
결국 남북 불가침 공동선언을 양보할 수 없는 선으로 제시한 북측과 우리측의 입장조율은 실패했고, 북측은 같은해 12월 7차 접촉에서는 갑자기 팀스피리트 훈련중지문제를 회담 의제에 추가할 것을 주장하다가 89년 2월 팀스피리트 훈련 강행을 문제삼아 준비접촉을 다시 중단시켰다.
이어 양측간에는 회담 중단 10개월만인 89년 10월 8차 준비접촉이 재개됐지만 팀스피리트 문제, 문익환·임수경·서경원씨 등의 사법처리 중지 문제 등을 놓고 90년1월24일 10차 준비접촉까지 논쟁을 벌여 회담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북측은 90년 2월 8일 팀스피리트 훈련을 명분으로 모든 남북대화를 연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국회회담 준비접촉은 더 이상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단독] 국민의힘, '보수의 심장' 대구서 장외투쟁 첫 시작하나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