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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지내왔는데 살아 있다니..." 뜬눈 밤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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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얼굴이나 한번 보고 죽어야지 했는데… 반드시 방문단에 포함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북측에서 통보해온 이산가족 명단에 동생 영백(67)씨가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남쪽의 형 김소백(73·포항시 북구 두호동·사진)씨는 "꿈에도 그리던 동생을 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어제(16일)는 한숨도 못잤다"며 연신 울먹였다. 김씨는 동생이 찾아올까 싶어 50년째 같은 동네서 이사도 가지 않고 살고 있다.

소백씨는 영백씨가 부모 형제의 곁을 떠난 때를 인민군이 포항까지 밀고 들어온 50년 가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섯 형제중 맏형 성백(43년 작고)씨를 제외한 경백(94년 작고), 순백(92년 작고), 소백, 영백씨가 함께 살다가 주변에 인민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던 어느날 갑자기 동생(영백)이 행방불명 됐다는 것.

소백씨는 다만 6·25 이후 우익기관·단체원들이 수시로 찾아와 자신에게 월북자 가족이라며 폭행, 막연하게 동생이 월북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하고 있었다고 했다위로 2명의 형들도 당시 포항공립중학교 3학년(당시 17세)이던 동생 영백씨가 행방불명됐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할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채 50년 세월을 보내다 이번 북측의 명단통보로 영백씨가 북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동생을 찾기 위해 두 형님(경백, 순백)과 함께 점도 숱하게 보러 다녔고 굿도 많이 했다"는 소백씨는 "동생을 만나면 아직도 살아계신 형수님 두분과 함께 형님들 산소에 가서 원혼에게라도 인사시킬 것"이라며 들뜬 표정이다.

"그 동안 기다린 세월을 봐서라도 저야 동생을 만날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때(한국전 당시) 동생과 함께 실종됐던 마을 청년들 가족들이 어젯밤부터 '우리 동생(형) 소식은 확인할수 없겠느냐'고 찾아오는 통에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형 소백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집을 찾아와 축하 겸 하소연을 늘어놓는 주변의 이산가족들을 보고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포항·林省男기자 snlim@imaeil.com

朴靖出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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