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성성한 산신령은 전설 속의 노인이며, 우리의 민담에는 모두 홀로 사는 것으로 묘사돼 있어 흥미롭다. 산신령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조선 중엽 한 선비가 문경 새재를 넘다가 어느 초옥에서 하루를 묵게 됐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는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선비는 그 노인의 눈빛이 하도 초롱초롱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칠순을 갓 넘은 나이로 보였지만 100세가 훨씬 넘은 나이로 산에서 나는 나뭇잎과 풀잎을 주식으로 삼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인면문(人面文) 와당은 신라인들의 여유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오직 하나만 남은 이 와당은 오랫동안 일본에 건너가 있다 돌려받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 기와는 둥근 수막새로 막새 가득 활짝 웃는 여인의 얼굴을 조각해 웃음과 여유의 미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옛 사람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지만 늙음에 대한 미련은 각별하다. 누구든지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그 때문에 인생의 '비무장지대'에 들어서면서 스스로 방어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앞의 짧은 두 이야기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경북도내의 100세 이상 노인은 97명(남 9, 여 89), 장수 마을은 영주시 문수면 만방2리로 조사됐다. 최근 경북도가 내놓은 '고령인구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은 10.2%인 28만8천248명이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만방2리의 경우 65세 이상 16명(남 6, 여 10) 가운데 100세 이상이 8명(남 4, 여 4)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영주의 장수마을은 우연히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속적인 욕망과는 담을 쌓은 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유가 보약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지만 세태는 날이 갈수록 '온갖 욕망의 도가니'로 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나이와는 관계 없이 젊게 사는 비결은 '욕심 버리기'라고 누가 말했던가. 여유와 웃음을 미덕으로 여겼던 옛 선조들의 슬기가 새삼스럽기만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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