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적막은 비슷한 말이지만 많이 다르다. 고요라는 말의 뜨락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벗어놓은 아침햇살이 있고, 적막이라는 말의 우산 속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저 혼자 비 내리는 늦은 밤 정거장이 있다. 고요는 다람쥐가 초록 속에 감춰둔 인적 끊긴 길가에 있고, 어느 날 사랑은 가고 이제는 텅 빈 그대 옆자리에 적막은 있다. 그러므로 고요는 가볍고 적막은 무겁다. 문명과 제도와 욕망의 우울을 먹고 사는 적막과 흰구름, 산들바람,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소리의 혈육인 고요는 비슷한 말이지만 이렇게 다르다. 그대 영혼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무릇 인간의 문화적 노력이란 가벼워지기 위한, 또는 적막에서 고요로 옮겨 앉기 위한 안간힘이 아닐까.
어느날 마침내 만져 보고싶은 그 보송보송한 고요의 맨발이 벗어놓은 햇살의 식성(食性)과 불 꺼진 창을 흘러내리는 저 끈끈한 적막의 허벅지에 달라붙은 파리의 그것은 어떻게 다른가.
초록 속으로 발뻗는 물들거나 녹슬지 않는 까치수염 기르는 나비떼 팔랑팔랑 불러들이는 아아, 내 마음 속 날다람쥐 허공 높이 쏘아 올리는 떡갈나무 숲길 같은…토담길에서 조껍데기술 아리아나 2층에 흑맥주 OB캠프에서 또 흑맥주 노래방에서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오오, 캄탐하게 처박히는 새벽 세시 두산동오거리 같은…잠에서 깨어나니 아아, 와 오오, 사이 어느덧 십년이 흘러갔네
곰삭은 어금니와도 같이 아무 말 못하고 허물어진 내 삶의 흑백사진 속에 갈앉은 시간의 앙금 속을 하염없이 꼼지락거리는 장구벌레는 그러면 고요의 자식인가 적막의 새끼인가
-'시작 노트' 전문
내 쓸쓸한 아침마다 찾아가는 수성구 범물동 진밭골 뒷산 오솔길에 와 보라. 고요가 살고 있다. 까치수염 기르고 나비 떼 날게 하는, 개미들의 긴긴 이사행렬을 말없이 지켜보는, 잠시 내 적막의 물기를 휘발시키는 힘센 고요가 저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끔 그리고 언뜻 만날 수 있는 에피퍼니(dpiphany:神性顯示) 같은 것. 고요를 살기는 힘들고 고요가 되기는 불가능한 꿈이다. 고요에 인간의 체온이 묻는 순간 그것은 아연 적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일이 있었다. 그곳 서해안 안면도의 푸른 소나무 숲에는 태초의 고요가 살고 있었다. 젊은 날 죽은 고등학교적 친구의 시비 제막식은 헌화로 시작되어 미망인의 인사로 끝났다. 슬퍼할 것, 추억할 것 저마다 챙겨들고 훌훌 떠난 뒷자리를 나는 오래 지켜보고 있었다. 고요가 적막으로 변하는 바람의 빛깔과 만져질 듯 아려오는 시간의 두께 앞에서 얼마나 망연했던가. 이승의 삶이란 고요와 적막사이 가건물 지어놓고 마른 풀잎처럼 부대끼는 것… 이보게 친구, 쓸쓸해하지마. 가파르게 살다 먼저 간 시인의 목소리가 푸른 솔바람 저쪽에서 들리는 듯 하였다.대구교육대 교수.시인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