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이 무너진다-시리즈 결산 좌담회

▲사회=지난 7일부터 본지가 기획 연재한 '지방이 무너진다'는 기사를 통해 점검했듯이 지방의 몰락, 지방의 왜소화가 심각한 지경이다. 특히 지방자치 실시이후 지방에서는 위기상황으로까지 진단하는 경향(京鄕)의 격차에 대해 중앙정부는 그 심각성을 거의 인식조차않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신경한 것 같다. 재선의 민선단체장으로 누구보다 현 중앙집중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을 김청장께서 먼저 진단해달라.

▲김 청장=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능 및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는 현실을 시급히 개선해야한다.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은 과감히 이관해야 한다. 지금 중앙은 힘들고 귀찮은 일만 지방에 떠맡기고 있다. 인력과 예산지원도 없이 국가위임 사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래가지고는 지방자체사무마저도 수행하기가 힘들다.

예산편성지침이라는 것도 심지어 자재구입 단가까지 정해줄 정도로 시시콜콜하게 지방자치단체에 간섭을 하고 있다. 명색이 지방자치라면서 이래서는 지방이 제대로 설 수 없다.

▲사회=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중앙집권적 사고가 아직도 뿌리깊이 박혀있어 그런 것 아닌가. 중앙정부가 그같은 후진적 행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빈껍데기뿐인 자치제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 소장=지방 황폐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지나친 중앙집중과 지방의 혁신능력 부족이 그 것이다.

지자체를 실시한 지 5년이 됐지만 일만 넘겨주고 예산.인력은 배분하지 않고 있다. 기계적으로 지방이양 사무의 가지 수만 늘려놓고 있는데 돈과 사람이 서울에 집중돼 있으면 지방자치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자치 주체의 혁신 노력도 있어야 한다. 지방 분권이라는 것도 지역의 혁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역 혁신을 위한 지역민의 주체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역대 정권마다 국토균형발전은 단골 메뉴였다. 그렇지만 그 것은 구호일뿐 한번도 우리는 제대로 나온 지역 육성책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 단장=지방을 왜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이 정치가들에게 부족하다. 그들은 표만 쳐다보고 있다. 사람으로 친다면 금융, 문화 등 혈맥이 중앙에 다 몰려 있는 판에 손가락이 죽어간다고 수혈을 해봐야 혈맥이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공허한 짓이다. 중앙정부가 할 일을 제2 제3의 서울이 나올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지방을 키워야한다.

중앙정부도 '작은 정부'를 통한 대외경쟁력 강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지방에 권한을 풀어주긴 줘야 하는데 안되고 있다.

▲사회=그처럼 지방의 파산 위기를 절실히 느끼면서도 전국의 민선 단체장들이 조직적으로 연대해서 중앙에 어떤 목소리를 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김 청장=그동안 단체장 모임뿐 아니라 정치적 통로를 통해서도 중앙정부에 건의를 많이 했다. 지난해에는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대통령 직속인 지방이양추진위원회까지 구성됐다. 또 지방이양 업무 리스트도 작성했다. 그러나 알짜배기는 없이 빈껍데기만 내려보내고 생색만 내고 있다. 지방정부에 맡기기에는 위험해 못주겠다는 식이다.

▲사회=중앙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지나친 것 같다.

▲김 청장=지방자치단체의 업무수행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광역이든 기초자치단체든 자기혁신을 위해 구조개선을 했고 효율적 행정수행을 위한 제도 강화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가 지자체들을 무시하고 획일적 행정만 강요한다면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없어 지방자치는 요원하다.

▲사회=한마디로 지자체를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자생력을 안 키워주겠다는 발상인 것 같다.

▲김 소장=선진국들은 대체로 분권화가 잘 돼 있다. 물론 도시간의 공평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역사적인 특성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보화시대에 중앙집중체제로는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분권화를 통해 능률을 높여야 한다. 지방이 커야 국가가 성장한다. 결정권을 지방에 주고 각 지방의 역량이 커져야 나라 전체가 경쟁력이 생긴다. 자치단체에서 할 수 없는 일의 지원과 조정이 중앙정부 역할이다.

▲사회=외환위기 이후 대구에는 성한 기업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 파장규모의 문제가 있겠지만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고 정부가 온갖 지원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만신창이인 대구에 눈길 한번 주지않는 정부에 대해 시민여론은 섭섭해하는 분위기다.

▲이 단장=대구경제의 몰락은 어쩌면 벌서 예견된 일이다. 과거 70년대 이후 개발연대 시대에 영남은 한국경제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하이테크쪽으로 바뀌는 와중에 대구시는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그 결과 20년전 포철 시설이 그대로이고 울산 중화학, 구미 전자업체 모두 힘든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대구는 영남권의 중추인 허브(hub)도시로서 자기역할을 찾아야 한다. 영남권의 허브인 대구를 제2의 서울로, 광주를 제3의 서울로 키워야 서울의 흡인력이 줄어들 것이다.

▲김 소장=대구는 정치, 경제 모두 선두였다가 붕괴했으며, 문화 역시 황폐화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구가 다시 부흥할 수 있느냐는 자원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구에는 자원이 풍부하다. 오늘날 지식기반 경제의 핵심은 교육이다. 교육도시인 대구에서는 국립대와 사립대들이 그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해왔다. 특히 자연과학계통의 두뇌들은 큰 자산이다.

선진국은 지방 활성화를 위해 지방대학들을 육성한다. 정부지원을 받은 대학이 지역 기업들에 인재를 공급하고 신기술 창출을 돕는 상호발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지역 대학들도 커리큘럼을 과감히 바꾸는 등 지역 개발을 위해 변해야 하며 사회 각 영역에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야 한다.

▲김 청장=독일의 경우 지역 특성화가 대학과 기업에도 형성돼 있다. 자동차산업이 발전한 도시에는 교육도 자동차 위주이며 맥주로 유명한 고장에는 맥주 교육이 주류다. 최근 독일을 둘러보고 내린 결론도 교육이 부강한 나라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사회=중앙이 권한을 내놓는 분권도 지금처럼 지방이 가만히 앉아서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중앙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기전에 지방이 무언가 나서야되지 않겠는가.

▲이 단장=독일, 일본 발전의 원동력은 애국애향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교훈과 교육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애국만 있고 애향이 없다. 대구.경북 사람이 대구와 경북을 사랑해야 대한민국도 사랑할 수 있다.

대구.경북의 번영을 위해서는 '소통이 없는 고립된 지역'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공을 위해 타 지역으로 나가면 배신자로 낙인찍고 외지인이나 기업이 들어오면 텃세 부리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면 외부에 아웃소싱조차 할 수 없다.

월드컵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는 대구시민들이 국제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가까운 예로 올림픽과 엑스포를 개최한 서울과 대전을 들 수 있다.

시 고위 공무원들도 이런 국제대회를 유치해놓고 경제적 이익만 계산하지 말고 시민의식을 바꾸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세계도시로서 대구의 이미지를 알리고 시민의식이 선진화한다면 당장 적자를 본다하더라도 그 부수효과는 대단히 크다고 본다.

▲사회=적절한 지적이다. 대구는 열린 자세로 세계화의 시대에 걸맞은 세계시민으로 나가는 자세전환이 시급하다고 본다. 대구의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한 원인도 특유의 지역적 폐쇄성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 소장=지방이 살기위해서는 분권(分權)운동과 혁신(Innovat-ion)운동을 이슈화하고 이를 지역민들이 계속 제기해야한다. 대학.기업.시민단체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책을 마련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시민운동화하는 한편 각 지역간의 네크워크를 통해 중앙정부를 상대로 분권화 연대운동에 돌입해야 한다.

그러한 자체 혁신노력이 없다면 지방과 서울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정리=이상헌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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