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일행이 평양을 다녀오더니 북쪽의 장관급회담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했다. 내달 초에는 언론사 사장단 50명이 방북하여 백두산까지 올라갈 모양이고 문화관광부 장관은 북측의 관광단을 제주도의 한라산에 맞아들일 제안도 내놓고 있다.무엇보다도 올해 8.15광복절에는 도합 200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월북.월남하여 반세기만에 서로 만나는 감격의 재상봉 드라마가 펼쳐진다. 못가볼 곳으로 여겨왔던 곳으로 찾아가고 찾아오고, 못 만날 것으로 여겨왔던 사람들끼리 찾아가고 찾아와서 만나게 되니 많은 사람들은 이제야 통일의 봄이 현실로 다가온듯 느끼고 통일의 논의 또한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난 새삼 눈을 비벼 살펴보면 달라진 것은 없다. 휴전선은 엄존하고 있고 국토분단의 현상엔 어떤 변화도 없다. 땅은 갈라진 그대로 있는 것이다. 땅만이 아니다. 하늘도 갈라진 그대로 있다. 남과 북이 저마다 이고 있는 이념의 하늘도 서로 다른 그대로이다. 심지어 서로가 부르는 나라와 겨레의 이름조차 남과 북은 하나가 아니다. 동.서독은 분단됐어도 서로가 같은 '도이치'란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남과 북은 한 쪽은 '한국'이고 다른 한 쪽은 '조선'이라 일컫고 있다.
천(天) 지(地) 인(人)-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갈라지고 사람이 갈라진 것이다. 그것이 천.지.인 삼재(三才)가 갈라진 남북분단의 입체적인 다층구조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지난날 억척스럽게도 무시해왔고 어리석게도 모르고 왔다. '38선' 또는 '휴전선'이란 지리적인 상징때문에 분단상황은 오직 '국토'의 분단이라는 평면적.일차원적 차원에서만 인식해왔다. 따라서 그러한 분단상황의 극복을 위한 통일방안 또한 '실지(失地)회복''남반부해방'과 같은 평면적.일차원적 사고의 테두리 속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1990년에야 '통일원'으로 개칭이 될 때까지 20년이 넘도록 '국토통일원'이라 일컫고 있던 것은 그러한 분단상황의 평면적 인식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국토의 분단, 이념의 분열, 민족의 분리-이 3중의 분단구조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가장 유혹적인 시도가 무력통일방안이다. 북쪽이 지금부터 50년전에 시도했던 '조국통일을 위한 정의의 전쟁'이라는 6.25 남침전쟁이 곧 그것이었다. 그 결과는 통일이 아니라 38선을 군사경계선으로 바꿔 더욱 굳혀놓은 분단상황의 심화였다.1969년 우리가 그때까지 없었던 '국토통일원'이란 정부기구를 새로 만들어 내걸던 같은 해에 서독은 우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969년 집권한 빌리 브란트 정부는 그때까지 있었던 '통독성(統獨省) '의 간판을 내리고 그대신 '양독성(兩獨省)'이란 새로운 정부기구를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과거에 'SBZ(소련점령지역)'으로 불렀던 동독을 정식으로'DDR(독일민주공화국)'으로 불러 국가승인을 해주고 독일땅에 두 국가가 실재함을 공식화하였다. 야당과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조차 특히 동독 및 동유럽 실향민 세력들로부터 '분단고착주의자''일방적 양보주의자''조국에 대한 배신자'등등 빗발치는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왜 그랬을까? 브란트의 이른바 '오스트폴리티크(동방정책)'의 기도는 환상에서 해방된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논리적이다. 동서독의 국토분단은 유럽의 한복판에서 나토동맹국과 바르샤바 조약동맹국이 맞붙는 새로운 세계대전을 도발하지 않고선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토분단의 극복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또 서로가 이고 있는 이념과 체제는 상이하다고 하더라도 민족분리의 비극만은 극복해야 되겠고 극복될 수 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갈라져도 같은 겨레끼리 사람을 갈라놓는 것만은 막아야 되겠고 막을 수 있다. 그것이 통독성 대신 양독성을 내세운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본발상이었다.
생판 외국사람끼리도 이데올로기가 다른 미국.소련사람들처럼 비자만 발급받으면 국경을 넘나들어 만나는데 동족끼리 못하란 법은 없다. 다만 분단의 경계선을 넘나들자면 비자와 같은 통행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그 증명을 해주는 당국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동독을 비로소 국가로 승인해주고 동서독이 동시에 UN에 가입했던 것이다.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우리는 이제 비로소 30년전 독일의 동방정책의 출발지점에 서게된 셈이다. 국토는 분단됐어도, 이념과 체재는 달라도,민족끼리 서로 만날 수 있는…. 최정호.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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