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비만'과 '수척' 선망이 엇갈려 왔는지도 모른다. 5세기의 조각상은 살이 통통하지만, 중세 비잔틴 시대에는 가련할 정도로 수척한 경향이었고, 르네상스 시대엔 다시 비만형으로 바뀌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나 밀로의 비너스도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비만형이다. 한때 수척형이 선호됐지만 2차대전 후에는 미인으로 칭송됐던 샹송가수 쥘리에트 그레코나 여배우 마릴린 먼로 역시 살이 쪘다.
아름다울 '미(美)'자는 '양(羊)+대(大)'로 살찐 큰 양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미의 기준은 이같이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런데 요즘은 단연 '수척' 선망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여성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살 빼기'라지만 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에어로빅·수영·조깅·과일다이어트·반창고다이어트 등 산전수전을 겪은 뒤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돼지 껍질' 다이어트 열풍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통적인 다이어트 이론과는 배치되지만 기름에 튀긴 돼지 껍질에는 탄수화물 함유량이 0%라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와 같은 이치나 심장병과 신장 기능 약화의 위험에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인 모양이다.
패션업계와 광고업계는 '말라깽이' 모델을 선호, 여성들의 섭식장애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여성의 체내 지방 비중은 22~26%인데 모델들은 10~15%에 불과하다는 영국의학협회의 보고서엔 일반여성들이 모델들의 몸매에 이르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부적절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대체로 막무가내다.
'주역(周易)'에 '야용론음(冶容論淫)'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성들이 얼굴이나 몸매를 생긴 그대로 두지 않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긴 표현이다. 비만은 이제 질병으로까지 분류되기도 하지만, '비만 노이로제'와 무리한 다이어트는 '정상'을 되레 '비정상'으로 몰고가는 행위가 아닐는지…. 여성들이 남성 우위와 예속을 자초하는 모순이 아닐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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