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검찰, 거물 피의자만 놓치나, 정부는 현대에 끌려만 가나

---검찰, 거물 피의자만 놓치나

대기업 세금감면비리의 주범격인 김범명 전(前)자민련의원을 검찰이 해외로 도주하도록 허술하게 관리한 사건을 놓고 '봐 준 것이냐' '실수냐'로 논란을 빚고 있다.

경위가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검찰이 중요사건 피의자를 수사중에 놓친 건 어떤 이유로도 납득 할 수 없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前)의원은 현직은행장 등 정관계 인사와 함께 약 10억원을 받고 모 대기업의 세금감면을 국세청에 로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요사건 피의자이다. 결국 이사건은 김 전(前)의원이 중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자칫 미궁으로 빠질 공산이 커졌다. 문제는 검찰이 보통의 피의자였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취급했겠느냐'에 있다. 물론 검찰은 이미 5~6년전의 사건이고 피의자가 자진출두한다고 해서 수사 실무차원에서의 실수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실수라고 하기엔 정황이 묘하다. 국세감면 로비는 그 자체가 사안이 큰데다 관련된 피의자들만 2선의 김 전(前)자민련 현의원에다 현직은행장·관계인사 등 그야말로 비중이 큰 인사들이 얽혀있는 사건이다.

이런사건은 아무리 5~6년전의 일이라 해도 국사범인데다 수사진전에 따라 정관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검찰로서는 놓칠 수 없는 대어(大魚)임엔 틀림이 없다.

게다가 이런 사건은 통상 상당한 내사를 거쳐 혐의가 거의 드러났을 때 소환장을 발부하는게 검찰수사관례이다. 그렇다면 1차 소환장 발부전에 의당 출국금지부터 시키는 건 수사실무의 기초에 속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봤을때 김범명 전자민련의원을 놓친건 검찰이 현재 정치권에서 공동여당끼리 미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너무 민감한 나머지 강제수사 대신 자진출두 형식을 취하다 결국 놓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또 이 사건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로 검찰 지휘부와 실무진간의 견해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리는 상황이라 더욱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물론 이 사건과는 성격이 약간 틀리지만 엄청난 액수가 거론됐던 경부고속철 로비스트 최만석씨를 검찰이 미근적거리다 미국으로 도피하게 한 사건도 있었던만큼 더욱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그뿐 아니다. 대법원 확정판결 바로 직전에 해외도피한 박병일 변호사(16대총선 자민련후보) 사건을 놓고는 법원과 검찰이 서로 책임을 떠미루는 촌극을 빚기도 했었다.

따라서 검찰은 우선 이런 의혹이 오해인 것이라고 자신한다면 어떻게 하든 김 전의원을 검거, 법정에 세워야 할 것이다. 또 이렇게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이 많고 잦으면 결국 '검찰의 독립성'은 요원하고 그건 검찰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정부는 현대에 끌려만가나

국내 제1의 기업집단군인 현대그룹이 자구노력을 둘러싸고 다섯달째 국민과 정부·채권단을 상대로 보이고 있는 불성실하고 거짓된 자세는 더이상 참기 어려울 만큼 분노를 치밀게 한다. 정부와 채권단 또한 그동안 현대의 이같은 태도에 끌려만 다니고 있는 모습은 돈을 빌려주고 감시감독을 하는 입장에 있으면서 되레 주눅이 든 것 같아 무능·무력하게 보이기도하고 현대에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대문제가 단순히 정부·현대·채권단간 등 3자간의 문제로만 끝난다면 그게 제대로 풀리든 풀리지 않든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문제로 국민경제가 IMF사태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작금의 상황에선 현대가 국민전체를 벼랑끝에 몰아넣고 위험한 장난을 해도 정부는 엄포만 놓고 있는 꼴이다.

지난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현대 정씨형제의 전근대적인 경영권후계분쟁으로 시작된 시장불신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정부·채권단이 현대에 네차례나 자구방안을 요구했고 현대는 그때마다 이를 어물어물 넘겨왔다. 이때문에 시장불신과 대외신인도추락은 현대뿐 아니라 국가신인도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기에 이르렀지만 현대는 아직 "배 째라"식의 버티기만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이번에도 현대는 한달째 일본에 머물고 있는 현대 그룹의 실질적 총수라할 수 있는 정몽헌 회장이 귀국하면 어제 자구책을 발표하겠다고 해놓고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과 정부에 약을 올리듯 내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북사업을 협의하기위해 소떼를 몰고 방북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태이후 정주영 전명예회장은 다섯차례나 병원에 입원했고 정몽헌 회장은 외국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서 정부당국의 면담요청마저 거절하고 있는 것은 정부를 무시하고 국민이 안중에 없는 듯한 태도인 것이다. 정 현대아산회장은 현대사태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먼저 철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한다. 국민을 볼모로한 위험한 버티기 작전을 버리고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하고 있는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현대사태가 제2의 대우사태가 된다면 경제위기이후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이룩해온 국민적 위기극복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정회장은 소떼방북보다 이 문제를 앞서 챙겨야할 것이다.

정부도 엄포만 놓고 현대에 질질 끌려만 갈 일이 아니다. 이제 현대사태는 시간과의 싸움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정부는 대책과 결단을 보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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