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15상봉 서울-평양 작별 표정

○…천근보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3박4일간의 만남을 마치고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을 떠나보내는 환송행사가 열린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 본관 앞은 애달픈 석별의 정을 나누는 남북이산가족들의 눈물로 바다를 이뤘다.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고 북으로 가는 아들, 딸, 형, 동생, 아버지를 한번 더 붙잡고 눈물로서 재회를 맹세하건만 기약없는 생이별의 슬픔은 억누를 수 없었다.서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북측 상봉단은 18일 아침 평소보다 20여분 빠른 오전 6시40분께부터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하지만 4일간의 꿈같은 상봉의 시간은 끝나고 이젠 떠나야 한다는 서글픔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탓인지 북측 상봉단의 생기없이 얼굴은 침울해 보였고 어깨는 축처져 있었다.

밤새 울어서인지 눈이 퉁퉁 부어오른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날까지 밥 한그릇을 거뜬히 비우며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던 북 상봉단원들은 이날만큼은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다.

한 상봉단원은 "밥알이 아니라 돌알을 씹는 기분이었다"며 하염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커힐호텔 본관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북으로 보내는 혈육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모여든 남쪽 가족들로 북적댔다.

남쪽 가족들의 손에는 대부분 "이종필 큰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형님, 살아서 꼭 다시 만나요" 등 북 가족을 환송하는 형형색색의 종이피켓이 들려있었다.

○…북 상봉단과 남쪽 이산가족들은 호텔 본관앞에 주차해 있는 버스 앞에서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25분여동안 눈물의 상봉을 했다.

재혼한 아내를 전날 극적으로 만난 하경(74)씨는 이날 아내 김옥진씨가 선물한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변치않는 사랑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아들 정기씨는 하씨를 부둥켜 안고 큰 소리로 '아버지'를 잇따라 부른 뒤 "54년만에 아버지를 맘껏 불러봤다"며 하씨를 등에 업고 애써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동생 운선(69)씨 등 남쪽 가족 11명과 '백운기 할아버지 또 만나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가족 기념사진을 촬영한 백운기(77)씨는 "가슴이 아프지만 굳게 마음먹고간다"며 슬픔을 억누르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북한 문화예술계의 제1호 여성박사인 김옥배(68)씨의 어머니 홍길순(87)씨는 딸을 보내는 슬픔에 딸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엉엉 소리를 내 울었고 숙배(64)씨 등 여동생은 김씨에게 울면서 언니에게 큰 절을 올려 작별을 고했다.

북측 상봉단 박상업(68)씨는 동생 상우(61)씨에게 "경의선이 완공되면 개성까지 애들을 데리고 와서 개성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했으며 권중국(68)씨는 "평양사람들은 2년뒤면 통일될 걸로 다 알고 있다"며 "그 때 꼭 다시 만나자"고 아쉬운 이별을 나눴다.

북의 언니 문양옥(67)씨를 환송하러온 동생 경자(60)씨는 언니를 찾지 못하자 언니를 수행하는 안내원 핸드폰으로 전화한 뒤 "언니 언니 어디가. 어제밤 건강히 살자고 약속했던 것 잊지 말아야 해"라며 흐느끼다 결국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새벽 우여곡절 끝에 거동이 불편한 노모 김애란(87)씨를 만난 양한상(69)씨는 가족들이 건네준 휴대폰으로 모친과 통화, "고맙습니다 어머니, 다시 오겠습니다. 꼭 갔다 옵니다. 다음에 올 때 살아계셔야 합니다, 어머니"라며 휴대폰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일부 북 상봉단은 버스에 오른 뒤에도 아쉬운 듯 남쪽 가족들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했고,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영수(66)씨는 버스에 오른 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모 김봉자(86)씨를 향해 '우리의 소원'을 선창, 가족들과 함께 불렀고 조용관(78)씨는 가족들이 준 사진을 꺼내보며 흐느꼈다.

또 남한 가족이 선물한 것으로 보이는 핸드폰으로 남쪽 가족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상봉단원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다.

○…북 상봉단원을 태운 8대의 버스는 당초 예정된 출발시간보다 15분 늦은 8시15분께 김포공항을 향해 떠났다.

남쪽 가족들은 버스가 떠나는 길에 늘어서 한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손을 흔들어 북 상봉단을 떠나 보냈다.

오빠 이래성(68)씨를 보낸 아나운서 지연(55)씨는 "50년 헤어진 세월에 비하면 형제들이 같이 있었던 24시간은 먼지 같이 작은 부분이지만 내평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면서 "외아들인 오빠가 그동안 불효를 했다며 이제부터 부모님 제사를지내겠다고 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춘명(70)씨의 조카손녀 정혜원(9.대전 중앙초등학교 4년)양은 "할아버지가 왜 가셔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두번 뵈었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만날 때까지 예쁘게 잘 자라라고 했다"며 아빠 손을 잡고 계속 울었다.

자원봉사자 김유미(26)씨는 버스가 떠난 뒤 자신이 돌봤던 북 상봉단의 가족과 뒤엉켜 "내 친할아버지도 이산가족인데, 이런 생이별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흐느꼈다.

○…18일 아침 고려호텔 로비에서는 서울로 향하는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북쪽 가족들간의 '짧은 만남 긴 이별'로 곳곳에서 부둥켜 안으며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이제 가면 언제 만나냐", "이렇게 또 이산의 아픔을 느낄 바에야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통일될때까지 부디 몸 성히 잘 있거라" 등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다양한 이별사와 함께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선우춘실(72)씨는 "어릴 적 키우다시피한 동생을 또다시 홀로 놔두고 내려가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버스출발때까지 '보고 또 보고' 싶은데 자꾸만 북측 안내원들이 쫓아내려 한다"고 한적 직원에게 하소연하자 "이제는 그만 가셔야될 시간입니다"며 간곡하게 만류하자 결국 하염없이 눈물만 쏟기도.

○…이번 상봉에서 여동생 둘을 만나 부모님의 제삿날을 알아낸 5대독자 김장수(68)씨는 누나 학실씨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신을 장수 네가 있는 남쪽을 바라다 보도록 묻어달라고 했다"고 유언을 전하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않으며 "오마니"라며 오열했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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