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일 과정을 생동하는 축제로

1989년11월9일은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날이다. 독일 민중들은 물론이고 세계 시민들은 동서 분단과 대립의 상징, 브란데부르크 문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모든 유형의 자유 왕래가 가능해지게 된 것. 그것 자체가 감동의 드라마였다.

그 뒤 1990년 7월부터는 동서독 화폐가 단일한 서독 마르크로 표준화되었고 마침내 10월3일엔 독일 재통일의 날이 왔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 이후로 삶의 희망이 커질 것을 기대하였고, 옛 소련의 변화를 따라 개방과 개혁을 표방했던 동독뿐만 아니라 동유럽 전체의 변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필자도 당시에 청운의 뜻을 품고 독일 유학 길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한편으로는 놀라움과 부려움을, 다른 편으로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평양예술단과 교예단의 서울 공연이 있었고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만났으며 외무장관들이 서울서 만났고 남쪽 언론인들이 평양을 방문했다. 마침내 각기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나고 생사를 확인했다. 8월15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은 가히 50년 분단 체제를 종식시킬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남북 통일을 하나의 긴 사회적 과정이라 한다면 첫째로는 헤어졌던 사람들이 제대로 만나야 하고, 둘째로는 그 만난 사람들이 참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통일 비용'문제나 상이한 언어 체계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하긴 하나 이 두 문제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독일의 경우, 역설적이게도 민족적 통일의 배후에 '사회적 분열'이 확대되는 것을 필자는 현지에서 체험했다. 그것은 동독인과 서독인이라는 '출신 성분'이 여전히 마음의 장벽을 유지시켰고, 능력 있고 약삭빠른 소수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나 비정규직 등 새로운 주변부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식 '통일의 덫'을 예방하기 위해, 헤어진 가족들이 포옹하며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감동의 드라마를 넘어 차분히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우선,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데에도, 단순히 '휴전선 장벽'을 넘을 수 있는 면회소를 많이 또 빨리 설치해야 하는 문제나 그 장소 문제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50년 이상 존재해 온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가장 옳은 지름길은 모두가 이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필자 생각에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가장 옳은 지름길은 모두가 이념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결국에는 인간답게 살자고 해서 나온 것이 아니던가? 서로가 서로의 내면으로 들어가 솔직하고 정겨운 소통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상이한 삶의 구조를 남북의 민중이 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일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혁신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경쟁과 착취의 패러다임도 득복해야 하고 통제와 감시의 패러다임도 극복해야 한다.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도 극복해야 하고 물신주의와 관료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요컨대 한반도판 '제3의 길'이 절실하다. 정답이 없기에 만들어나가야 한다.

한판으로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다른 편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 엄청난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이름 모를 수 많은 민초들이 그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통찰력을 '아래로부터'다양하게 모아야 한다. 통일 과정이 남북 민중에 의한 '생동하는 축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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