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정치자금은 성역인가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제2단계 외환자유화를 앞두고 돈세탁방지를 위해 자금세탁방지법과 금융거래보고법(가칭)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자금은 여기서 제외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는 국민의 정부가 과연 개혁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외국의 경우는 대체로 마약밀매 등 범죄조직이 돈세탁을 활용하고 있으나 우리는 대부분 정치자금을 비롯한 로비성의 검은 돈이 대부분이다. 전두환 노태우라는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결과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또 형사정책연구원자료를 봐도 최근 9년동안 돈세탁을 한 사람들은 국회의원,고위공직자,조세.관세공무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름을 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일반국민의 인식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회적투명성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99년말 기준 국가부패지수에서는 99개국중 50위를 차지 했고 뇌물지수는 조사대상 19국중 2위를 했다. 또 97년 경제위기의 원인을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돈세탁방지법은 정치자금의 정화를 오히려 주목적으로 해도 좋을 상황이다. 그런데도 재경부는 정치자금관련법은 별도입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논리를 펴 천부당만부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돈세탁방지법은 이미 97년 한보사태를 계기로 국회에 상정됐으나 의원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밀려 자동폐기된 바 있다. 그런데 어느때보다 개혁을 강조하는 국민의 정부에서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적어도 정치개혁의 의지는 없는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가을정기국회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으므로 그동안 정부가 이를 수정하기 바란다. 정치권이 스스로 이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모양새는 더욱 좋을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조사한 자금세탁규모는 연간 48조~14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33%나 된다. 이러한 엄청난 불법세탁을 방치한다면 내년의 자유화조치와 함께 우리나라는 돈세탁 중간기지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경제도 언제까지 국제금융시장에서 투명성부족을 이유로 불신을 받을 것인가. 이제 우리경제도 선진국경제로 패러다임을 바꿀 시점도 된 이상 과감히 그리고 신속하게 투명성제고를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법에 의해 설치될 금융거래정보기구의 운영에 따른 프라이버시침해 등 몇가지 문제점 등은 우리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지혜를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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