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이 수입 농산물로 유린되고 있다. 중국산 마늘과 건고추로 버무린 김치에다 국산으로 둔갑된 수입 콩과 수입 멸치로 국물을 낸 된장국, 수입 소고기로 만든 장조림 등 우리 식탁에서 순수 토종을 찾기는 퍼즐게임만큼 어렵다. 조상을 끔직이 챙기는 우리네 제삿상에서도 중국산 고사리와 수입 조기 등이 국내산을 비싸다며 따돌린 지도 이미 오래. IMF 후유증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방 사람들의 지갑 형편에선 올 추석 제사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후식거리에서도 올 엄청난 수요를 보인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 바나나 등이 우리네 감귤과 방울토마토 등을 대신, 점차 외국산에 길을 내 주고 있다. 당연 이를 재배하고 기르고 하는 우리네 농가들이 비명을 지른다.
수입 먹거리들로 우리 농촌이 피폐해 지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블랙홀'같은 조류속에 수입개방은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 그러나 정부의 대외 협상력 부족에다 규모의 영세성, 높은 인건비 등 근원적 악조건을 쉬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변변한 방패하나 없이 알몸으로 노출된 형국이다. 속속 위기에 처하고 있는 우리의 생명산업, 특히 외국산과의 경쟁으로 곤경에 처한 농축산물을 대상으로 그 현주소와 대안을 짚어본다.
【영천】경북도내에서 포도재배면적이 가장 많고 도내 포도 총수확량의 28%를 차지하는 영천지역은 포도재배로 연간 600~700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이 앞다퉈 벼농사를 포기하고 포도농사로 전환, 포도과잉생산현상이 나타나는데다가 칠레산 수입포도가 국내시장을 잠식해 들어갈 경우 국내포도재배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게될것이 불보듯 뻔한 현실이다.
관세청자료에 따르면 칠레산포도는 지난 97년 8천895t이 수입됐다가 98년에는 IMF사태로 수입물량이 1천139t으로 감소된후 지난해는 6천119t이 수입됐다.
그러나 올해는 6월말까지 7천382t으로 수입물량이 늘어났으며(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6% 증가) 연말까지는 97년의 수입물량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산관계자들에 따르면 칠레산포도는 씨알이 굵고 당도가 높으며, 씨가 없고 껍질채 먹을수 있어 신세대들이 선호하는데다 근래들어 대도시 식당의 후식용으로, 술집의 안주용으로 국내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수입가격이 9kg당 1만9천원으로 칠레산 포도 최대수입시기인 3월부터 6월말까지 출하되는 국내의 시설재배포도가격 6kg당 7만2천원보다 월등히 헐해 경쟁력에서 국내 시설재배포도는 칠레산 포도의 상대가 되지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도내에서 상주지역의 경우 칠레산 수입포도의 영향으로 지난달말 비닐하우스 포도 1상자(5kg) 출하가격이 지난해 3만원에서 20%정도 하락한 2만4천~2만5천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도시설 재배면적이 70ha로 시전체 포도재배면적(2천912ha)보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인 영천지역의 포도재배농가들은 칠레산 포도수입으로 당장의 타격은 없지만 수입물량이 계속 늘어 점차 국내 포도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책도 없다는 것이 지역 포도재배농가들의 고민이다. 영천보현산포도작목반 성석용대표(52)는 『공산품을 수출하기위해 농산품을 희생시키는 정책때문에 농민들만 죽어나는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6월이후 잠시 주춤한 칠레산 포도의 수입이 재개되는 9월말부터 11월초까지 같은 시기에 수확되는 만생종포도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걱정했다.
정태준 영천시 과수원예담당은 『칠레는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칠레산 포도의 국내 수입시기가 3월~7월에 집중, 지금까지는 6~7월에 주로 출하되는 국내 시설재배포도가 타격을 입고있지만 3개월이상 저장해도 상품성이 떨어지지않는 칠레산 포도가 앞으로 계절구분없이 국내에 수입, 유통될 가능성이 높아 포도재배농가와 농정당국이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천시는 지난 98년과 99년 2년연속 일기불순으로 포도수확량과 상품성이 크게 떨어져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 올해 포도과잉생산에다 수입포도까지 가세할 경우 포도값폭락으로 지역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게될것으로 우려, 포도판로개척에 고심하고 있다. 徐鍾一기자 jiseo@imaeil.com
전국적으로 고추 등 농산물 값이 수입농산물에 밀려 산지 가격이 하락, 생산농가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MMA(최소시장접근물량)에 따른 중국산 고추의 수입 본격화와 병충해 발생으로 인한 상품저하·일손부족·가격하락세 등 본격 수확철 인데도 일부 농민들이 자신이 생산한 고추를 수확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하는 등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일손부족은 추석을 앞두고 일선자치단체에서 도로변 가꾸기,공공근로사업, 최근 을지훈련으로 인한 공무원들이 대거 훈련에 참여하는 바람에 고추수확기를 노치고 있다. 전국 최고 고추 주산지인 청송·영양지역의 경우 최근 햇고추가 본격 출하돼, 한근(600g)당 청송지역은 1천100원이 떨어진 3천200원, 영양지역은 지난해보다 500원이 떨어진 3천800원선에 거래, 지난해 같은기간 가격보다 27%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이 오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입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 중국산 고추 수입에 따른 파장을 예견, 중간상인들이 집단으로 수매를 중단하고 관망상태에 있다. 이에 따라 청송을 비롯한 북부지역 고추재배 농가들은 최근 산지 고추가격이 3천원대를 유지, 오는 9월부터 중국산 고추의 수입 이전에 수확 판매하기 위해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게다가 유통공사측은 MMA에 의해 중국으로부터 올 총 5천900여t이 수입하지만 지난 6월말까지 1천여t이 이미 들어온 상태, 9월 이후 4천900여t이 한꺼번에 국내로 반입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 대형 식품회사들도 중국산 고추로 가공된 별도의 양념류를 엄청나게 수입, 일본으로 수출되는 가공용 고추가루도 값싼 중국산을 썩어 가공돼 수출하고 있어 국내산 고추의 가격하락에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고추시장의 변화에 따라 청송·영양군과 일선 농협들은 자매결연지를 확산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 판로확보에 나서고 있다. 청송군의 경우 고추판매를 위한 대책협의회를 구성, 소비자 기호에 맞는 고추 생산에 우선두고 있다.
농협 청송군지부 김영대 총무과장은 올해산 고추가격 하락이 예상돼 농협별로 자매결연을 확대하고 대형유통업체에 군내 생산량의 30%인 1천400여t이상을 판매할 전략을 세워놓고 전국 농협을 통해 주문을 받고있다고 말했다.
특히 황호일 청송군 부군수는 『청송고추의 차별화로 대도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고품질의 고추생산을 위해 고추작목반에 공급된 세척기를 활용, 군내 생산량의 20%인 740여t을 세척 및 세척태양초로 생산, 일반고추보다 근당 1천300∼2천800원이 비싼 근당 4천500원∼6천원선에 대도시 백화점, 각종 단체에 계약, 공급하기로 했다.
군은 재일교포 출향인을 통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추를 고추가루 가공업체인 청송농산(대표 이상업)을 통해 170여t 수매, 고추가루로 가공해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것. 청송읍 부곡리 소재에서 2천여평에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45)씨는『중국산 고추수입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지금까지 고민, 고추를 수확해야할지 안해야할지 판단이 안선다』고 말했다.
영양군의 경우 대도시 백화점을 비롯 전국유통망을 가진 유통회사와 영양고추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600g당 타지역보다 500원 이상 높은 4천300∼4천700원에 계약 공급하기로 했으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이유는 역병과 탄저병 등 병해충에도 불구 풍작을 이뤘으나 상품 고추가 없거나 수확 일손부족으로 제때 출하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추농 김정만(46·영양군 석보면 홍계리)씨는 『병해충으로 인해 수확량이 많으나 상품이 적다』며, 『중국산 수입물량으로 인해 가격하락 불안심리를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청송지역의 고추생산은 년간 1천998ha에서 4천700여t이 생산돼 320여억원,영양지역도 2천135ha에서 5천100여t이 생산돼 340여억원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전국 대형유통업체 및 농협,백화점을 통해 각각 1만2천여근이 납품되는 등 년간 총생산량의 66%선이 판매되고 있다.청송·金敬燉기자.kdon@imaeil.com.
영양·嚴在珍기자.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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