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벌초길의 아이들

내일 모레면 어느덧 9월. 지난 6월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 평양방문으로 시작된 남북화해무드가 8.15 고향방문으로 이어져 온나라가 떠들석했던 금년 여름도 끝나가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은 지난주 대부분 개학을 했다.

중학교 1학년짜리 둘째아이는 개학전날에서야 밀린 숙제를 한다고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붙어앉아 부산떨었다.

독서 감상문과 인터넷을 이용한 에너지 절약관련 자료조사 등이 중요한 숙제였다. 예전의 단골메뉴였던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은 방학숙제에서 밀려난지 이미 오래다

◈첨단 아이들 대부분 '자연맹'

교육적인 효과에도 불구, 너무 힘이 들어 대부분 어른들이 대신해주거나 인근 문구점에서 돈을 주고 사서 숙제를 대신하는 때문에 폐지된 것으로 기억된다.

도시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자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않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면서 더더욱 그런 기회가 줄어들고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느끼는 것중의 하나. 아이들이 우리가 먹는 작물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일부 지역에서는 집중호우로 적지않은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지금 들녘에는 벼가 충실해져 가고 그 옆에서는 생명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고추, 가지, 콩, 호박, 오이, 깨 등이 무성한 잎그늘에서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가고 있다. 또 그옆 비닐하우스에는 초가집 지붕위에서나 볼수있었던 박이 아직은 작은 수박만한 크기로 가을의 성숙을 기다리고 있다.

발걸음을 조금 더 옮기면 웃자란 부추에 꽃이 피어 마치 메밀꽃처럼 하얗게 온밭을 뒤덮고 있다. 씨를 받기 위한 것이다.

◈컴퓨터 보급후 더 심해져

삼각대 지주를 세운 오이밭에서도 어른 손가락만한 작은 것과 다 큰 것이 한데 뒤섞여 익어가고 있다.

들깨밭에는 씨앗보다 쌈거리 잎의 수요가 많았던 때문인지 다 자라기도 전에 잎을 따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맨위쪽의 순만 남아 있을뿐 아래쪽에는 잎이 한장도 붙어있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은 매일 여름식탁에 올라오는 이들 작물의 이름은 알아도, 실제 들에 나가면 어느게 어느것인지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들녘 작물들의 잎을 모아보는 작물채집을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내주면 어떨까. 에너지절약법을 숙지하는 것과 동화책을 한권 더 읽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작물의 이름을 익혀 두는 것도 그에 못잖게 의미가 있다. 작물채집숙제는 큰 힘이 들것 같지도 않다. 자연친화의 기회를 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밀과 보리를, 참깨와 들깨를, 박잎과 호박잎 정도는 구분할수 있게 해주자.

◈인성교육, 자연속에서 뿌리내려야

정부는 최근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의 내년 프로젝트중 하나로 식량작물의 육종 기술개발을 선정했다. 작물 유전체 연구를 통해 친환경적이면서도 생산성이 높은 고유의 육종기술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식량수입국인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다음세대가 식량작물에 대한 애정을 가질수 있도록 어릴때부터 눈에 익숙해질수 있게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량작물을 통한 인성교육이 뿌리내리면 넘쳐나는 수입농산물 문제에도 어떤 해법이 있을것 같고 현재 문제가 되고있는 불량 농수산물 문제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확철이 다가오는 농촌풍경은 언제봐도 정겹다. 생명력이 온 들녘에 넘쳐나고 있다. 지난주 비때문에 벌초를 다녀오지 못한 분들은 이번주말 벌초 나들이때 자녀들에게 들녘의 작물을 소개해주는 기회를 함께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