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풍 '사오마이'할퀸 고령·영천 피해 현장

태풍 '사오마이'가 휩쓸고 지나간 지 보름째. 바람과 폭우로 알토란같은 전답과 과수가 휩쓸리고 떨어져나간 고령과 영천 지역 피해 농민들은 풍년가 대신 절규에 가까운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고령 봉산둑 붕괴지역

수마가 훑고 지나간 고령군 우곡면 포리와 객기리 들판은 황금 알곡 수확을 눈앞에 둔 다른 가을 들녘과는 달리 회색빛 진흙탕으로 뒤덮인 채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태풍 '사오마이' 내습으로 보수중에 있던 봉산제방이 터지면서 150㏊가량이 물바다가 된 지 보름째. 범람한 낙동강물은 말랐지만 30cm 두께의 뻘밭에는 흙범벅된 논밭, 처참하게 망가진 비닐하우스와 부서진 경운기, 화물트럭, 시꺼멓게 흩뿌려진 벙커C유 기름띠가 아직도 포탄맞은 전쟁터 그대로였다.

"20년간 남의 땅 빌려 농사지으며 돈을 모아 지난 97년 하우스 9동(1천400평)을 세우고 멜론을 심어 놓았는데 이 지경이 됐습니다"

'봉산제방 붕괴사고 피해보상대책위원회'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전기영(44·객기리)씨. 포리와 객기리를 통틀어 최대 피해자로 시설자금만 2억원을 날린 그에게 자연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주어지는 직·간접보상 혜택은 고작 1천여만원. 그나마 보상금이 언제 내려올지 몰라 "피가 마른다"고 했다.

피해가 전씨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피해 주민들도 보상의 옹색함에선 다를 바 없었다. 전정규 피해보상대책위원장은 "현재 이곳에서만 200여 농가가 침수피해를 입어 피해액이 20억원 가량인데 계상된 보상금은 1억9천만원뿐"이라며 허탈해 했다.

신·구 제방 사이에서 3천900여평 벼농사를 짓다 쌀 한톨 못 건진 김원석(54·포1리)씨는 제방이 터진 곳에서 부지런히 포크레인을 돌려대는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피해 논밭은 내팽개친 채 물도 다 빠졌고 비가 올 계절도 지난 저 곳은 열심히 복구중"이라며 당국의 앞뒤 안맞는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당시부터 인재(人災)임을 강조했던 피해 주민들은 이 때문에 자연재해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재를 불러들인 측을 대상으로 피해를 보상받아야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전 위원장을 비롯한 200여 피해 주민들은 지난달 29일 고령군청 옆에서 농기구 대신 피켓을 치켜들고 시위에 나서 일단 군청이 이를 중재토록 요구했다.

▨영천 낙과피해 지역

사과와 배 등 850㏊가 낙과피해를 입은 영천지역은 이미 부서질대로 부서진 농심에 헐값 낙과 수매까지 겹쳐 피해 농민들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었다.

경북능금농협 영천지소가 지난달 26일까지 능금주스용으로 수매한 사과는 20㎏들이 1만1천530상자. 가격은 상자당 2천500원. 낙과가 아니었으면 받을 수 있는 2만5천원의 10분1이었다. 중간상인에게 2천원밖에 못 받고 넘긴 농민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

2천300여평의 추황배가 60%이상 낙과피해를 당한 신녕면 화남3리 권문호(44)씨는 떨어진 배 120상자를 아예 이웃에 나눠주거나 거름통에 버렸다. 권씨는 "공판장에 내다팔려고 했으나 가격이 20㎏ 상자당 4천원에 불과, 운임 800원, 상자값 1천100원, 경매수수료 10%, 상·하차비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었다"며 한숨지었다.

쥐꼬리·늑장 피해보상에다 언제 마무리될지 모를 복구에 애타는 농민들에게 정부당국의 북한에 대한 식량 60만t 지원 발표는 어떻게 비쳤을까.

고령·金仁卓기자 kit@imaeil.com, 영천·徐鍾一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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