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고강도 사정(司正)을 예고하자 공직사회가 잔뜩 움크린 채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고위공직자들은 "경색된 정국을 꼭 대대적인 사정의 방식으로 풀어야 하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중.하위직 공무원들은 "사정의 칼날에 힘없는 하위직 공무원들만 다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더욱이 정현준씨 불법대출 사건 이후 부실기업 비리와 경제관련 부처 고위직의 뇌물수수,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탈세비리 등에 대해 정부가 상당부분 혐의를 포착하고 있다고 밝힌데 대해 공무원들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급 공무원인 모(53) 국장은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뜻은 좋지만 캠페인성 사정 작업이 얼마나 공정하게 효과적으로 비리 연루자를 찾아내 처벌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솔직히 털어났다.
대민 관계에 종사하는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표정도 얼어붙었다.
한 경찰관은 "이런 식의 사정작업이 시작되면 모든 공무원들이 소위 '몸조심'을 한다. 고급 음식점이나 술집은 웬만하면 발길을 끊고 모든 일에 납작 엎드려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당수 공무원들은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안과 정부여당의 정치력 부재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정이라는 수단을 선택했으며, 이는 결국 집권층의 잘못을 "네 탓"이라며 공직사회로 돌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여야, 공직사정 방침에 촉각
여야가 정부의 고강도 사정 방침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사회기강 확립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등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당 소속 인사의 연루 가능성을 우려, 자체적으로 내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검찰 지도부에 대한 탄핵안 등으로 여권이 수세에 몰려온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한 "야당 압박용 카드"라고 반발하고 있다.
사실 대규모 사정설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발표 직전인 지난달 초부터 정가에 나돌았다. 김 대통령이 조기 권력누수 현상을 막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특히 야당을 겨냥할 것이란 등의 얘기였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그동안 사정관련 정보 수집에 주력하면서 내부적으로 대책을 거듭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사정은 "올 것이 왔다"는 게 야당의 인식인 셈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까지 나서서 부정부패 척결을 촉구해 왔음에도 야당이 막상 이번 사정 방침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정방침에 호응, 내달 착수할 예정인 전국 지구당에 대한 조직정비를 통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교체시키겠다고 공언하는 등 정부 측 방침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사정의 핵심기관인 검찰과 금감원 등이 최근의 잇딴 비리 사건 등으로 비난 여론에 몰려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이들 기관의 신뢰성과 공정성 문제를 집중 부각시켜 나가기로 했다.
같은 맥락에서 권철현 대변인 등이 나서 "불신받는 검찰이 중심이 되는 사정을 보고 국민들은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고민" "탄핵표결 사기극으로 정국이 급랭하자 서둘러 진행되고 있는 국면 전환, 내부 단속용, 야당 압박용 등 다목적 사정"이란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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