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민 울린 브로커·직원 '공생'

경매브로커들이 법원 소속 집행관사무소 사무원들과 유착해서 유체동산 경매 질서를 어지럽히며 채무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벼룩의 간을 빼먹은 짓'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빚에 몰려 가재도구까지 압류당한 서민들을 등쳐온 브로커는 물론이고 법원안에서 불법을 저지른 집행관 사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사실 법원 주변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대구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길태기, 주임검사 윤갑근)가 이번 수사를 통해 파악한 유체동산 경매 브로커는 줄잡아 50~60명. 이 가운데 처벌대상에 오른 경매브로커는 14명에 불과했으나 이들과 집행관사무소 외근 사무원 9명 전원이 검은 고리를 맺고 있었다는 점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경매브로커들의 전매 차익 수법은 다양하고 교묘하기 짝이 없다. 브로커들은 평소 금품을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져놓은 집행관사무소 사무원들이 감정가보다 싸게 나온 경매사건의 정보를 알려주면 채권자에게 접근해 사건을 위임받아 직접 경매를 신청해 단독 입찰하는 속칭 토스사건이 대표적 수법. 또 사무원이 경매공고 자체를 하지 않거나 경매시간 및 장소를 특정 브로커에게만 알리고 기록을 은닉해 단독 입찰하는 속칭 잠수사건도 흔한 범행.

몇몇 경매브로커는 집행관사무소 게시판에 부착된 경매 정보를 떼어내 정보를 독점, 감정가에 낙찰받는 수법과 경매에 참가하려는 일반인을 협박해 단독 응찰하는 방법도 동원했다.

경매브로커들은 낙찰받은 물건은 빚때문에 압류당했던 원주인이 되사는게 대부분. 이때 원주인이 낙찰가보다 비싸다고 가재도구를 사지 않으려 하면 브로커들은 협박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서민들의 원성이 드높았지만 그동안 브로커들을 제대로 처벌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경매브로커들이 노리는 것은 전매 차익. 이번에 구속된 경매브로커 최모(30)씨는 770만원에 경락받은 물건을 다른 경매브로커 이모(31)씨에게 910만원에 팔고, 이씨는 채무자에게 1천500만원에 되파는 등 경매 물건 한건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 과정에 집행관사무소 사무원들은 별 죄의식없이 관행적으로 이들의 범행을 도와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채무자의 집을 방문해 딱지를 붙이는 외근 사무원 9명 전원이 경매브로커들로부터 상시 금품을 받아왔으며 공고 안하기, 기록 은닉 등 한심한 짓으로 다른 사람의 경매 참여를 봉쇄한 것이 대표적 사례. 사무원들은 그 대가로 금품을 받았으며 잠수사건 또는 토스사건의 경우 경락가의 10~20%, 명도용역 집행의 경우 노무임의 10%가 뇌물로 정해졌다.

이처럼 사무원들이 경매브로커와 장기간 광범위하게 유착되어 있었으나 이들을 관리하는 집행관이나 법원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밝혀 의혹을 사고 있다.

경매브로커와 사무원의 유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채무자 몫. 경매로 넘어가는 가재도구를 건지려면 웃돈을 줘야하고 되살 돈이 없어 사지 않으려하면 경매브로커의 협박에 시달려야 한다. 3천300만원에 경락된 모온천탕 주인의 경우 1억원에 되사라는 경매브로커의 제의를 거절했다가 건장한 남자들이 몰려와 망치로 출입문을 파손하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4천만원에 되샀다.

100만원의 보증채무증 90만원을 변제하고 나머지를 변제하지 못해 가재도구를 압류당한 한 채무자는 경매브로커가 자개농,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재도구를 157만원에 낙찰받아 제3자에게 370만원에 파는 바람에 웃돈을 주고 사야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들의 광범위한 불법행위에 혀를 내둘렀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가재도구까지 경매당할 처지에 몰린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죄질은 다른 어떤 범행보다 아주 불량하다"고 말했다.

경매브로커들이 설칠 여지를 주는 현행 경매 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도 높다.

검찰 한 관계자는 "경매브로커의 횡포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감안해 경매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유체동산 일정표 공고, 경매공고 서면을 떼어가지 못하도록 유리로 차단하는 방법 등 대책이 있어야 할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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