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뜰에 얼음이 꽁꽁 얼었다. 얼음을 돌로 으깨다가 투명한 유리조각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한 무리 새떼가 긴 적막을 남기고 사라진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어디 세월뿐이랴. 겨울산은 긴 침묵으로 깊어가고 있다.
책읽기는 책과 살을 섞는 경험이며, 거기엔 글쓴 이와의 달콤한 접촉이 있다. 사람을 위한 집과 지식의 곳간인 책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해큰 재목감을 동량(棟樑: 마룻대와 들보)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무와 일생을 함께한 일본의 궁목수(宮木手) 니시오카 쓰네가스의 삶과 철학을 담은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을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다.
궁목수가 되면 민가나 마을집을 짓지 않으며, 궁궐이나 절만을 짓고 이윤을 남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논밭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한다. 목재의 질은 나무가 자라는 토양과 기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남쪽에서 자라는 나무는 가지가 많고 굵으며,북향의 나무는 가지가 적고 가늘다. 서풍이 많이 불면 남쪽가지가 동쪽으로 틀어지는데 틀어진 나무는 원래대로 돌아가고자 한다. 나무의 특성이며 성깔이다.
도편수들은 "나무를 사지말고 산을 사라"는 지혜에 따라 산의 나무를 골라 나무가 자라는 방향에 따라 집을 짓는다. 남쪽에서 자란 나무는 옹이가 많아 남쪽 기둥에,북쪽 나무는 옹이가 적어 북쪽 기둥에,산 정상의 나무는 목질이 강해 구조재로,골짜기 나무는 양분이 많아서 판재로, 각각 생육방향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무의 마음이며 생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혜로 법륭사는 1천300년의 생명을 지켜왔다고 한다.
건축물은 풍설(風雪)을 견디며 성깔을 나타낸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신앙의 예지(叡智)를 배우는 사람이다. 우리가 자연을 등지고 획일적인 몰개성으로 내몰리는 것은 자연에서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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