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KBO 선수 방출 파문

"괴로워서 미치겠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지난 1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파문 과정에서 삼성의 간판스타 이승엽이 밝힌 심경 토로였다. 명분으로 보면 가입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 딱한 처지의 표현이다.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술까지 마신채 삼성시절 절친했던 선배이자. '선수협의회' 주동자중 한사람인 최익성(당시 한화)에게 불참의사 발표이후에 쏟아지는 질책에 대한 괴로움을 전화를 걸어 속내를 보인 것이었다. 당시 현대구단의 정민태는 '인터넷으로 접속된 여론을 보고 충격받았다. 답답해 미치겠다"고 했다던가.

'선수협'을 둘러싼 KBO의 대응 등이 파문을 확산하고 있다. 지난 18일 2기 집행부 구성이후 주역선수 6명을 방출키로 해 선수들은 '장외투쟁'을 선언, 또다시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구단측의 대응에 따라서는 프로야구 자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각 구단은 비선수협 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득에 나섰지만 성공여부는 미지수다.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이어서 지난 1월의 사태와는 전개상황이 다르다.

그동안 침묵상태였던 LG선수 44명 전원이 '선수협' 가입을 의결하고 롯데·현대 선수들도 동조, 사태는 새 국면으로 치달아 KBO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14개 단체도 '선수협'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이어서 선수들로 보면 원군을 만난 셈이다. 문화관광위 소속 민주당, 한나라, 자민련 의원 11명도 'KBO의 극약처방이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행위'로 치부해 이래저래 KBO는 암초에 걸려 후속조치 등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됐다.

KBO의 주장 밑바탕에는 '선수들의 힘'을 단순하게 우려한 것이어서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이 구상하고 있는 사단법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선수협과 일일이 협의해야 한다면 구단보고 야구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고 보면 조금은 답답하다. '동등한 지위는 절대 안된다'는 발상자체도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미국이 53년 노조를 결성했고 일본도 선수회를 85년에 노조로 전환한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외국의 상황이 우리와 꼭 같을 수는 없다고 해도 현실은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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