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친구의 이민

고등학교 때 단짝이 이민을 간단다. 캐나다에서 아이스크림 팔아 먹고 살 계획이라는데 그것도 웬만해서는 불가능한 것을 자기의 경력 때문에 가능했단다. 그렇게 보면 그의 경력이 만만치 않다. 서울의 미아리 판잣집, 작고한 작가 김소진의 소설에 나오는 바로 그 길음동 출신이다. 태백에서의 더 이상의 광부생활을 포기하고 부모님이 정착한 곳이란다. 성실하고 정직한 부모님 밑에서 쾌활한 성격을 키웠고, 부지런하기 이를 데 없어서 공부도 참 잘했다. 몸도 건강해서 축구시합 때 잘못 부딪혀 다리 부러진 친구도 있었다.

명문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른 바 안정된 금융기관에 취직하여 잘 살았다. 판잣집 터에 2층을 올려 서울 와서 막노동하던 광부 출신 아버지께 월세를 받게 해드렸고 자신도 몸 약한 서울 여성과 결혼하여 그런 대로 중산층 가족을 이루었다.

문제는 IMF 사태와 구조조정. 40대 중반이면 쫓겨나기 딱 좋은 나이라 하더니 10 여 년 직장에서 물러앉게 되었고 새 직장 취직은 꿈도 못 꿀 판이었다. 저금한 것은 이 때 대개 다 써버렸단다. 그래서 걱정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불안해하는 아내와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외동아들을 달랑 업고 낯선 캐나다에 가서 새 삶을 찾는단다. 그 두려움과 불안을 애써 감추는 친구는 그래도 자기는 괜찮은 경우라고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뇌리엔 지나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이다.

그 친구가 군대갈 때 나는 그를 배웅 해준 적이 있다. 이번의 김포공항 배웅에서는 휴가라는 걸 기대할 수 없을 지 모르겠다. 그 때 무슨 말을 해줄까. 늙으신 부모, 친구들과 헤어져 가는 친구야, 이 곳이 살기 좋아져 다시 돌아올 날이 있지 않겠니? 그러나 그의 성실함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팔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납득할 수 없어 그냥 웃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속으로만 되뇌이면서.

대구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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