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 초대석-조계종 전계대화상 범룡스님

"마음을 잘 써야 자신의 평온도 이루고 세상도 극락이 되는 거지요". 석가탄신일(5월1일)을 앞둔 지난 19일 동화사의 허름한 산내암자 비로암(毘盧庵)에 주석하고 있는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범룡(梵龍) 스님을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았다. 십수년된 납의와 낡은 스웨터를 걸친 검박한 범룡스님은 화엄경의 선용기심(善用其心)을 떠올리며 오로지 마음 심(心)자 하나를 설파했다.

"마음을 바로 쓴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지. 하루간에도 변화무쌍한게 마음이요, 죽을 때까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게 마음이거늘…".

수행자들조차 화두와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큰스님은 그래서 조그마한 '선용기심'이라도 실천이 중요하다고 했다. 평생 청정수행해 온 선승답게 미혹에 휩쓸리기 쉬운 속인들에게 평상심(平常心)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강조했다.

"그게 현대인들의 정신적·사상적 방황을 치유하는 '귀중한 약'이야". 이어서 '부지런하라'는 사자후를 토해냈다.

"아무리 좋은 일인들 게으른 사람이 무엇을 이루겠어요. '대방광불화엄경'도 부지런히 읽어야 영험을 얻든가 하지…".

범룡스님의 설법은 '초발심자경문'으로 이어졌다.

"처음 마음을 발할때 곧 정각을 이룬다(초발심시 변정각, 初發心時 便正覺)고 했지만, 발심이 어렵지요".

처음 공부할 때와 성불하는 날이 다르지 않다며 투철한 발심을 강조한 스님은 계법(戒法)을 전하는 최고의 계사(戒師)답게 스님은 계율을 강조했다.

"싫고 좋고가 어디 있어. 부처님 계율을 표준으로 법을 좇아야지. 그러면 저절로 질서가 서고 혼란이 없어져".

스님은 원효대사처럼 계를 뛰어넘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은 성인의 경지에 이른 선지식들이나 특별히 가능한 일이라며, 계를 지키지 못한 수행자들의 자기 변명을 위한 무애행(無碍行)의 흉내를 엄중 경계했다.

"세속의 중생들이야 부처님 말씀 하나라도 마음속에 담아 익히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면 그것이 곧 계를 지키는 것이지 너무 어렵게 생각할 일은 아니야".

금강산 유점사에서 만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에게 이번 초파일에는 남북분단후 처음으로 금강산에 연등불을 밝히게 됐다며 그 감회가 남다르지 않겠느냐고 묻자 묵묵부답, 염화미소로 화답했다.

1941년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스님은 동화사 주지, 봉암사 조실을 거쳐 재작년 11월 조계종 전계대화상에 추대됐으며, 현재 동화사 산내암자인 비로암에 20년째 주석하고 있다.

큰 스님 친견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선입관에 다소 비장한 각오로 비로암 삼층석탑앞에 우두커니 섰지만, 불의의 방문객을 따뜻이 맞아주는 스님의 배려에 적이 놀랐다. 말미에는 손수 지은 차(茶)까지 한잔 받았으니 전생에 선업을 쌓았던 보응(報應)이 아닐까.

"악(惡)을 짓지 말고 선(善)을 행하라". 합장 배웅하는 노스님을 뒤로하고 절 초입을 나서는데 비로암 풍경소리가 그토록 청량할 수가….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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