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부처님 오신 날'에

오늘은 불기 2545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스스로 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 중생을 위해 평생 길에서 살다 길에서 떠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탄생한 바로 그날이다. 그가 태어나면서 처음 뱉은 탄생게(誕生偈) 중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나'는 무엇을 뜻하는가. 인연에 따라 나타난 모든 개개의 존재를 일컬으면서도, 홀로 있으면서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구현을 말한다.

붓다는 그래서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죽어가는 중생의 삶을 아파하고, 스스로 가난을 택해 그들과 더불어 나눴다. 나아가 그들에게 붓다가 되는 길을 일러 주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늘 초파일을 맞아 불교를 믿든 안 믿든 그가 세상에 처음 나와 했던 말인 '유아독존'의 참 뜻, 모든 존재의 귀함을 되새겨 보고, '나'를 '소아(小我)'로 좁혀 보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근년 들어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하며 '부활절'과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서 서로 축하를 나누는 분위기는 아름답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교의 인(仁)사상,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사상, 기독교의 사랑 정신으로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자'고 외친 적이 있으며, 조계종 혜암 종정은 '마군(魔群)과 제불(諸佛)은 본래 한몸'이라며 그 일체지(一切智)의 경지까지 수행의 결과를 이룬 사람이 '부처'라고 시사했다.

어느 성당에 '부처님 오신 날!알렐루야!'라는 현수막이 붙고, 신학대학원생들이 한 사찰에 '부처님 오신 날 경축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화제다. 민족의 성사를 낳은 3.1독립선언이 종교 간의 화해와 협력의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놀드 토인비는 일찍이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우주적 보편 종교가 만난 것'이라 했지만 21세기야 말로 모든 종교가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나무들이 허물없이 옷 벗을 때/우리 얼굴 벗고 만나고/우리들 옷 걸치고 무리지어 설 때/우리 다시 귀면(鬼面) 달았다/흘러라 귀면이여, 우리 사랑은/수상하게 사월 파일 연등놀이에도 끼고'라는 황동규의 시 '연등'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저께 대구에선 연등축제가 열렸고, 어제는 많은 모범수들이 가석방됐다. 오늘은 '근로자의 날' '법의 날'이기도 하지만, 하나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속에 하나가 있듯이, 온 누리에 온통 자비만 충만하기를 기원해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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