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김남주 '학살 1'

이 시의 뒷 부분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아 얼마나 끔직한 밤 12시였던가/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이렇게 무서운 시가 있다는 사실을 아마 많은 독자들은 모르리라. 한국 현대사에서 5. 18은 특별한 날이다. 시는 당대 현실에 강력히 저항하는 항체역할도 해야한다. 다산 정약용은 '나라'를 걱정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 나라는 바로 민중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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