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보고-경북북부지역 봄가뭄

오랜 봄가뭄으로 논.밭.과수원과 농민들의 가슴이 함께 타들어간다. 밤새 양수기로 물을 퍼도 모자라 모내기나 제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농민들은 이렇게 가뭄이 오래되면 올 밭농사는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또 6월 중순까지 많은 비가 올 가능성이 작자 물때문에 이웃과 언쟁이 잦고 신경도 예민해졌다.

◇가뭄 현장=3월에서 5월 현재까지 영주의 강우량은 57.0㎜. 지난해 같은 기간의 56%(112.0㎜). 10년 평균 211㎜의 27% 수준이다.봉화군 물야면∼봉화읍∼영주시 이산면∼평은면을 지나는 내성천은 물길이 완전히 끊겨 사막같다.

봉화군도 같은 기간 강우량은 44.5㎜로 지난해 159.6㎜의 28%.

5월 초 옮겨심기를 한 고추와 콩, 수박 등 밭작물은 물을 대지 못해 생육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

봉화군 물야면 북지3리 정목순(70)씨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봄가뭄이 심한 것은 처음"이라며 "지난 9일 1천500여평에 옮겨 심은 고추가 가뭄에 타죽어 16일 새 모종을 구해 심었으나 잘 자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주시 장수면 소룡1리 송봉선(61)씨는 "이달 초 1천200여평의 밭에 고추 정식을 했으나 가뭄으로 다 타들어 가고 있어 밭에 나가 보고 싶지도 않다"며 하늘을 원망했다.

봉화 유림녹지원 김기운(55)씨는 "1천200여평의 밭에 잣나무 묘목을 심었으나 70∼80%가 잎이 말라 죽었고 나머지를 살려 보려고 물을 주고 싶어도 나무를 적실 물조차 없다"고 했다.

전기모터를 이용, 지하수를 빼 올려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봉화읍 해저리 안더구 마을 김진년(72)씨 등 6가구에서는 "이제는 지하수도 고갈돼 물이 1주일 이상 나오지 않는다"며 "지하수를 깊이 파서 물을 먹는 이웃집에서 길어 먹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북부지역중 다른 곳보다 좀 낫다는 문경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물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고추.참깨.잎담배 등 타들어 가는 밭과 과수원 등에는 보다못한 농민들이 하천에서 경운기로 물을 퍼 올리고 긴 호스를 이용해 물을 대는가 하면 트럭에 물탱크까지 설치, 물주기에 나서고 있다.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노팔암(62)씨는 "이처럼 오랜 가뭄은 처음"이라며 "1천평도 안되는 논물 대기에 2∼3일씩 걸리고,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는 손도 못쓰고 있다"고 했다.

의성에서도 수확을 20여일을 앞둔 마늘. 양파 등 밭작물이 타들어가고 있다.

낙동강 지류인 쌍계천.남대천.미천 등과 소하천 곳곳은 벌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안평면 등 일부 지역은 밭작물 수확을 포기해야 할 위기다.

19일 밤부터 의성의 크고 작은 저수지가 일제히 송수를 시작하자 농민들은 횃불을 밝히고 밤새워 물대기에 나섰다.

박수홍(44.봉양면 사부2리)씨는"저수지 송수 소식을 듣고 마늘을 살리기 위해 20일 새벽 5시까지 밤새워 마늘밭에 물대기를 했다"며"그러나 고추와 참깨 등 다른 밭작물 물대기는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라고 했다.

◇물 구하기=물 구하기 전쟁이다. 물이 나올만한 곳에는 이미 소형관정과 하천굴착을 해보지만 상당수 지역에는 퍼 올릴 물조차 말라 버렸다.

봉화군 물야면 내성천과 영주시 이산면 장수면 등의 소하천에도 10∼20여m 간격으로 하천을 3∼5m 정도씩 굴착해 물이 고이면 양수기와 경운기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퍼올리고 있지만 워낙 많은 농민들이 지하수를 퍼 올리다 보니 하천의 물조차 말라 몇시간 물을 길면 바닥난다.

봉화군 물야면 북지2.3.4리와 가평1리 10여만평에 물을 대는 외뚜들보 수리책임자 정목순(70)씨는 "워낙 물이 귀해 몽리민들끼리 협의해 낮에는 윗들, 밤에는 아랫들에 물을 대어 순서대로 모내기를 하고 있으나 수량 부족으로 모내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서로 자신의 농토에 물을 먼저 대려고 말다툼을 하는 사례도 잦다.

봉화군 물야면의 한 동네 주민은 "물 웅덩이를 파서 논에 물을 대려다 이웃 주민이 자신의 논에 물을 댈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이웃간에 불화만 생겼다"며 "물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물싸움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는 등 인심마저 메말라 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지난 18일 영주시 이산면 운문리와 문수면 만방리 주민들은 "운문정수장 송수관 파열로 물이 누수되면서 200여농가 15만여평의 논에 물을 대지 못해 모내기를 할 수 없다"며 농업기반공사에 항의하기도 했다.

또 이산면 석포2리 못골 주민들도 "지하수 고갈로 8ha의 논에 물을 댈 수 없어 1993년 건립된 양수장이 무용지물이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해 영주시가 양수장 인근에 소형관정 뚫기 작업을 하고 있다.

◇대책=영주시는 가뭄을 대비해 7억4천여만원을 들여 2곳의 암반관정 개발과 7곳의 양수장 보수 등을 하고 있다. 지난 18일 긴급이앙 용수대책비 1억2천만원을 읍면에 지원, 8곳에 간이용수원을 설치하는 한편 소형관정 135곳을 개발하기로 했다. 또한 경북도에 3억5천여만원의 예산지원을 요청했다.

봉화군도 5억2천8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암반관정 10곳과 소형관정 56곳을 개발 중이고 최근 읍면에 2천여만원의 예비비를 지원, 하천굴착과 물웅덩이를 파고 있다.특히 봉화읍 주민의 식수원으로 하루 평균 3천여t이 필요한 봉화취수장에 유입되는 물이 1천800여t에 불과해 지난 17일부터 양수기를 동원, 석천에서 물을 끌어 올려다 사용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제한급수를 하고 석포면 하승부리와 학교마을 24가구에는 소방차를 동원해 식수를 공급할 계획이다.

문경.윤상호기자 younsh@imaeil.com

영주.봉화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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