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골서 성공한 '국제 라쿠 심포지엄'

반백의 머리에 허름한 한복, 까만 고무신을 신은 정인표씨(50)씨. 청도 각북면 비슬산 자락에서 '비슬문화촌'을 열고 있는 그는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그는 혼자 힘으로 1억원이 넘는 막대한 돈을 들여 국내외 저명 도예가들을 초빙, 27일까지 엿새간 '국제 라쿠 심포지엄'을 열어 도예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라쿠'(Raku)는 도예의 한 분야. 신구대 이희순 교수는 "도자기라 하면 으레 높은 온도에서 굽어내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으나, '라쿠'는 낮은 온도에서 굽고 식히면서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라쿠'라는 단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린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

이 행사를 위해 정씨와 아내 김영자(44)씨는 몇달간 아주 힘들여 준비했다. 자금난을 겪기도 했고 몸살로 드러눕기도 했다. 외부 도움 없이 국제행사를 열겠다고 나섰을 때 "조그만 촌에서 어떻게 국제행사를 해낸다는 말이냐?"던 주위의 만류가 옳은듯 보일 지경.

그러나 정씨는 "한 미국인 도예가와 했던 약속을 어기면 국제적인 망신"이라며 행사를 강행했다. 행사 첫날이던 지난 22일. 드디어 주위를 놀라게 한 일이 일어났다. 미국.영국, 일본 등에서 외국인 도예가가 9명이나 참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공 교수 24명, 전공 학생 80여명이 몰렸다. 작가들은 손수 작품 만들기를 선보이고 '라쿠'의 국제적 동향, 작가별 독특한 표현법 등에 대한 연구 발표회를 가졌다.

초청 자체가 힘들고 도착해서도 일부는 떨떠름한 태도를 보였으나, 외국작가들도 첫날 저녁에 있었던 경북도립 국악단 정악 연주를 듣고는 엎어지더라고 했다. 도도한 태도로 고집을 부리던 일본의 한 도예가는 연주를 들은 뒤 곧바로 작품 기증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씨 본인은 정작 도자기에 문외한이었다고 했다. 본업은 철강업. 그러다 5년 전 사업을 접고 도예가인 아내와 함께 각북에 '비슬문화촌'이라는 도자기연구소를 열었다. 지금까지 한 투자만도 자그마치 30억여원. 전재산을 털어 넣었다고 했다.

처음엔 300여평의 땅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늘려 900여평에 이르렀다. 분야도 도자기뿐 아니라 음악.연극 등 종합적 문화공간으로 키웠다. 우연히 들렀던 사람들은 "청도에 이런 곳이 있었나?"고 놀랄 정도.

정씨가 "이같은 행사를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열어 이곳을 한국 라쿠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고 하자, 아내는 "라쿠라는 새로운 도예 기법을 체험하는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받았다.

청도.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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