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폐지 줍는 박동수·서생이 노부부

대구 동성로에서 폐지줍는 노부부, 박동수(73) 할아버지와 서생이(65) 할머니. 두 사람은 가게에서 쏟아져 나온 폐지를 줍느라 청춘 남녀들 사이를 쉴새없이 비집고 다닌다.

활기에 찬 동성로와 달리 폐지 줍는 노부부의 늙은 손은 무척 느리다. 할머니가 주어온 종이 상자를 리어카에 싣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문방구용 칼로 종이 상자를 둘러 싼 비닐 테이프를 자르는 할머니의 손도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다.

할아버지는 이미 키보다 높이 쌓인 짐 위로 종이 상자를 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얹힌 줄 알았던 종이 상자는 할아버지가 미처 밧줄을 치기도 전에 주르르 흘러내린다. 노부부의 느린 동작은 미끄러지는 종이상자를 붙들기에도 벅차 보인다. 그러기를 몇 번, 할아버지는 기어코 고무 밧줄을 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팽팽하게 당겨지지 못한 밧줄은 종이 상자를 질질 흘리고 만다. 할아버지는 그런 일쯤은 이미 만성이 됐다는 듯 느슨한 밧줄 틈새로 종이 상자를 하나씩 덧끼운다. 그리고 출발.

박동수, 서생이 부부의 폐지모으기는 올해로 4년째. 동성로의 즐비한 가게에서 쏟아지는 종이 상자를 모아 고물상에 내다 판다. 중앙파출소에서 대구백화점에 이르는 거리가 두 사람의 일터. 하루에도 수십 번 이 길을 오르내린다.

"애들이 일자리가 없으니 우리라도 벌어야지…" 노부부에겐 두 아들이 있다. 그러나 큰아들은 IMF때 직장을 잃었고, 기술이라곤 운전밖에 없는 작은아들은 사고 후 겁에 질려 운전대를 못 잡는다. 30여년 목수생활 후 은퇴했던 박동수 할아버지가 7년만에 다시 일을 시작한 이유였다. 목수일을 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할아버지의 일자리는 없었다. 일자리가 나선다고 해도 대패를 끌 기운도 연장 통을 메고 높은 곳에 오를 자신도 없다. 그래서 부인 서씨와 함께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어떨는지 몰라도 노부부에게 폐지 모으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4시까지 쉬지 않고 모아야 150㎏. 1㎏에 50원이니 고물상에 내다 팔면 7천500원이 고작이다. 종이 상자를 다 챙긴 후에야 할아버지 할머니는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이미 시계바늘은 오후 5시를 향하고 있다. 8시간 이상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셈이다.

박 할아버지 부부는 지난 4년간 하루도 폐지줍기를 쉬어본 일이 없다. 비오는 날엔 비를 맞았고 바람 부는 날엔 그대로 바람을 받았다. 그런 노부부에게 가장 큰 시련은 단속반. 지난 연말엔 단속반에 리어카를 빼앗겼다. 리어카를 종일 끌고 다니지 않고 길가에 세워둔 때문이었다. 70세를 훌쩍 넘긴 노인에게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끌고 다닐 힘이 없다는 것을 법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노부부는 빼앗긴 리어카를 되찾고 싶었지만 '벌금 10만원'이라는 말에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한쪽 팔과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몇 해 전 찾아온 중풍 때문이다. 문방구용 칼로 비닐 테이프를 자르는 모습이 어설퍼 보였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식사 때는 왼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번갈아 든다. 할아버지는 난청이 심하다. 식당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불쾌해 할 만큼 큰소리를 질러야 겨우 기자의 말을 알아들었다.

정열의 거리 동성로와 폐지줍는 노부부의 늙은 손. 좀처럼 어울릴성 싶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세상이 잔치를 벌이는 동안에도 골목길 한 모퉁이엔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일하고 싶다'고 외치는 노인들. 오랜 노동으로 충분히 지쳤을 그들은 진정 일이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서' '돈 벌고 싶어서'라는 말대신 체면에 눌려 그렇게 에둘러 외치는 것일까.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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