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북부 가뭄현장을 가다

북부가 가물어 난리라는 소리가 들려 온 지 벌써 오래. 그러나 남부지역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얼마나 말랐기에 저러는 것일까? 남의 눈으로 한번 봐 보자고 대구에 사는 기자가 차를 몰았다. 그저 북쪽만 바라보고 달리는 중이었지만, 길목이었던 의성.청송의 길 가 논들은 그런대로 견뎌 내는 듯했다. 모내기를 한 논마다 어쨌든 물이 보였고, 고추.담배도 푸른 기운을 띠고 있었다.

청송의 초입 현서. 면사무소의 이정태(56) 산업담당은 "천수답이나 성장기의 고랭지 채소는 타격이 있지만 저수지 덕분에 아직은 용수난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 면에만도 이미 뚫은 관정이 109곳. 마음이 급하다 보니 200m도 안되는 거리에도 마구 뚫는다고 했다. 백자리 박종옥(65)씨는 "수로는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고 고추를 심어야 하지만 물이 없어 포기했다"고 했다.

오후 2시30분쯤 당도한 영양군 입암면 영양여중고. 마침 소방차가 와 있었다. 400여명 학생이 하루 쓰는 물은 8~10t이나 이날은 불과 1.5t만 급수됐다. 생활관에 사는 이현주.김민정(15.여중2)양은 "수세식 화장실을 못쓰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용수도 제한 급수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진섭 소방사는 "입암저수지까지 말라 물을 떠올 곳도 마땅찮아졌다"고 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니 청기면 당리. 신복순(42) 아주머니가 그냥 젖었을 뿐 물기라고는 비치지 않는 논에 억지로 모를 박아 넣고 있었다. "이미 모내기 시기를 놓쳤습니다. 혹시 일주일 쯤 안에 비가 올려나 싶어 심어나 보는 중이지요". 그냥 말라 죽는 것을 각오하고 이판사판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옆 들에서 만난 이성욱(45)씨는 자기 모내기는 아예 체념하고 남의 일을 거들고 있다고 했다.

"수고하시라"는 아무 쓸 데 없는 인사치레나 하고 "경북 끝까지 가 보자"고 나서던 길가에 흐드러졌던 것은 고추밭. 그러나 그것들은 발갛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봉화군 재산면으로 넘어가다 어디에선가 허연 무엇이 피어 오르길래 산불이 난 줄 놀라 뛰어 갔더니, 밭 골 타는 관리기가 흩날리는 먼지였다. 밭에서 웬 먼지일까 싶었지만, IMF 사태 이후 귀향했다는 김태복(36.남면리)씨는 아예 마스크까지 갖춰 '먼지 사태'에 대처하고 있었다. 혹시 비가 오려나 싶어 먼지가 돼 버린 밭골이나마 타 두려는 것이라고. "풍습 때문에 기우제마저 하지는 넘겨야 지낼 수 있다니 더 답답합니다".

면사무소 사람들이 거의 말라버린 하천 물웅덩이 양수작업 현장을 보여줬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피라미들이 마지막 미동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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