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홈&라이프-좋은 아빠 생각보다 쉬워요

'아버지'란 호칭이 그립습니다. 꼬박 꼬박 월급이나 가져다 주고 잠만 자고 나와야 하는 '하숙생' 같은 신세가 이 시대 대다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요.

자녀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술자리에 끼어 귀동냥이라도 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퇴근 후 피나는 자기계발을 해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아버지들은 마음만 앞설뿐 '아버지의 길'에서 멀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어깨가 축 늘어집니다.

아버지들, 그렇다고 주눅들지 마세요. 여러분의 자녀는 그래도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매일 출근 때마다 자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담듯이…

자녀와 가까워 지는 길은 특별하거나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자녀와 살갑게 지내는 우리 이웃의 몇몇 아버지들을 소개한다.

▨정흥표(44.대구시 동구 백안동.별정우체국장)씨=자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할 정도로 열성파. 3년 전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아버지학교'에 참여한 후 아들 연두(14), 딸 소라(11)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엄한 아버지였다면 프로그램 참가 이후 그는 자녀의 주장과 입장을 우선 듣고 필요하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를 시키려고 노력하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했다. 이전엔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연두를 꾸짖고 매를 들었으나 요즘엔 아예 음료수를 사들고 아들이 있는 오락실에 찾아가 대화를 나눌 정도. 자녀와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휴일이면 가능한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기도 한다.

최근들어 직장일이 바빠 자녀에게 편지를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소라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라도 하는듯 가끔 "아빠, 사랑해요. 열심히 공부하고 착한 딸이 될게요"라는 내용의 '사랑의 쪽지'를 식탁 위에 슬며시 둘 때가 많다.

정씨는 자녀에게 좋은 성적보다는 예의바르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올 8월에는 연두를 흥사단이 마련한 중국 옌볜(延邊) 여행 프로그램에 보낼 계획이다. 나약함을 떨치고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 결심했다고 한다.

▨최희동(36.대구시 수성구 시지동.공무원)씨=최씨는 '친구같은 아빠'이다. 일곱살인 아들 선규, 여섯살인 딸 유진. 한창 장난치고 놀기 좋아할 때이다. 최씨는 퇴근후 귀가하면 '토끼'같은 자녀들의 요구를 뿌리치지 않고 몸이 지칠 정도로 같이 논다. 거실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공차기와 레고놀이를 하다보면 1~2시간이 후딱 간다. 유진이와는 주로 책을 함께 읽거나 그림을 그린다.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가족 모두 우방랜드를 찾아간다. 토요일 오후나 휴일에 직장의 축구동호회 모임이 있으면 꼭 선규를 데리고 가 열심히 운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그러나 직장관계로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일주일에 2~3일에 불과한 최씨. 그런 이유때문인지 최씨는 아버지로서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50점 밖에 안될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정재홍(32.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은행원)씨=일을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딸 다인의 얼굴. "오늘은 퇴근하면 부모님 집에 있는 딸의 얼굴을 보고 집으로 가야지"맞벌이인 정씨는 세살밖에 안된 다인이를 본가인 대명동에 맡기고 있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다인이를 만나러 가지만 정씨는 토요일이 너무 길게 느껴져 평일에 혼자 본가를 가는 날이 잦다. 그래서인지 다인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고 따른다.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찾기는 해도 울지는 않지만 아빠가 없으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고 한다. 정씨는 아기를 목욕시키는데도 '선수'이다. 생후 6개월부터 다인이 목욕을 도맡아왔기 때문. 머리도 땋아주고 밥도 먹여준다. 다른 집이라면 엄마들이 맡아 하는게 보통이지만 정씨는 자신이 직접 하고 싶어 한다.

다인이와 '상봉'하는 주말과 휴일. 정씨는 이날만큼은 만사를 제쳐놓고 다인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별다른 놀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거나 미끄름틀을 태워주는 게 고작이지만 이들 부녀에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