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양 부유층 중심 서구화 바람

지난 4일 평양에서 열린 한복패션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민족옷 전시회'를 계기로 북한의 패션현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의 패션역사는 지난 89년경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평양축전을 앞두고 북한당국이 '사로청'( 현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 '여성동맹' 등의 조직을 통해 청년층과 대도시 주민 및 여성을 대상으로 옷차림과 머리단장을 잘하라는 내용의 각종 캠페인을 단계적으로 전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캠페인에서 북한은 여성들의 머리모양으로는 '옥류머리' '수국화머리' '들국화머리' '조발머리'등을 권장했다.

그때까지 검정 통치마에 흰저고리 일색이던 여성들의 옷차림을 다양화하려는 캠페인은 '천리마'등 잡지를 통해 전개됐다.

당시 천리마는 '여성들의 몸매와 옷 형태에 대하여' 등의 제목으로 5, 6회에 걸쳐 몸매에 맞는 의상형태를 소개하면서 체형에 따라 옷의 색과 디자인을 결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90년 여름 평양 등 대도시 거리에는 소매없는 웃옷 등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담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어 났다 .

이에 대해 당시 여성잡지 '조선녀성'은 '계절과 옷차림'등의 기사를 통해 여성들에게 세련되면서도 젊잖은 옷을 입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이 잡지는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깨끗한 색들로 맵시있게 옷을 입도록 하되 여름옷감은 속이 훤히 비치는 것이 많으므로 속옷차림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의 패션은 90년대 후반들어 더욱 발전속도가 빨라졌다. 지금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구촌의 다양한 패션도 북한에 흘러 들어가 주민들의 옷차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지난 99년 깃이 없는 윗옷이 유행한데 반해 지난해에는 자락이 짧은 윗옷이 인기를 끈 것처럼 우선 패션의 변화 주기가 빨라졌다.

또 원피스 등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이었던 디자인에서 벗어나 이제는 너도나도 다양하고 화려한 패션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4·3)도 "꽃피는 봄, 화창한 이 계절에 산뜻하고 밝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면 한결 돋보이게 되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상쾌할 것"이라며 봄에 어울리도록 청색, 회색, 밤색, 수박색, 연분홍색, 분홍색, 보라색 등의옷을 입는 것이 좋다고 권장했다.

자본주의 사회 부유층 여성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겼던 반지, 귀고리, 목걸이를 착용한 여성들도 평양에서만큼은 흔해졌다.

북한 패션도 이처럼 해마다 변화를 보이지만 특징적인 것은 젊을수록 꽃무늬가 있거나 화사하고 화려한 색깔을 좋아하며 나이가 많을수록 단색이나 단순한 패션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패션은 물론 평양에서 시작되며 패션을 선도하는 층은 북송교포들과 외국여행을 할 기회가 많은 대외부문 종사자와 예술인들이다.

특히 일본에 있는 가족·친척을 통해 일본과 남한에서 유행되는 패션이 북송교포들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부유층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부유층이 주로 거주하는 평양시 창광거리, 천리마거리 등 중구역 일대가 북한 패션의 전시장 역할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일부 부유층 여성들은 남한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입지 않는 나만의 고유한 패션'을 추구하면서 자칫 같아질 수 있는 옷차림을 피해 외화상점이 아닌 해외출장 기회를 이용해 옷을 구입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선중앙텔레비전의 아나운서들도 유행의 선두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주로 한복 차림이었던 이들 아나운서는 매일 새로운 디자인의 고급스런 양장을 선보여 여성들의 패션을 이끌고 있다.

이와함께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만든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의류가 북한 각지의 외화상점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는 것도 패션의 변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한편 북한에는 한마디로 패션모델만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은 없다.

북한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그때 그때 신체조건을 갖춘 사람을 뽑아 모델로 활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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