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일의 가뭄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지표수는 물론 지하수까지 모자라 비나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UR 이후 국가는 무려 100조원 이상의 돈을 농업에 투입하면서 기반 정비에 최대의 초점을 뒀었다. 1995년에는 '항구적 가뭄대책 10개년 계획'이 발표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왜 100여일의 가뭄에 온 나라가 휘둘릴까? 일부에서는 벌써 이번 한해를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 지적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돼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시리즈(1):위기 관리에 무신경해졌다.
국가 존재의 가장 기본되는 목적은 위기 관리. 그때문에 3공화국 당시까지만 해도 관정을 못쓰게 방치한 군수는 당장 목이 달아나야 했었다. 하지만 민주화.지방자치화 이후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1999년에 밭 기반정비 사업을 했던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 경우 2개의 대형 암반관정을 팠지만 관리 부실로 고장이 나 가동을 못했다. 1998년에 뚫은 상운면 하눌리 암반관정도 이번엔 소용이 없었다. 연 1~2회 정도 물을 퍼 올려 주는 등 암반층을 관리해야 했지만 태무심했던 것.
1995년에 만든 영주시 평은면 천본2리 망월마을 암반관정 역시 물을 뿜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곳 석영달(56)씨는 "굴착 당시부터 위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했지만 묵살됐다"고 했다. 영양군 입암면 금학리, 청기면 당리 등의 암반관정도 위치선정 잘못으로 철분.석회질 섞인 물을 토해 내는 바람에 못쓰고 있다.
안동시청 경우 최근 5년여 동안 3천여만원씩 들여 암반관정을 96개나 뚫었다. 하지만 이제 와 정작 쓰려니 10%는 자동 폐공됐고 50%에서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영양군내 농사용 소형관정 400여개의 80% 이상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아 이 한가뭄에도 무용지물이다.
경북도청은 지난 3월 말 도내 관정들을 점검한 결과 모두 3만1천554개가 있고, 대략 잡아 시.군마다 1천400여개에 이른다고 집계했으나, 가동까지 해 보는 제대로된 점검이 아니라 외관 점검에만 그쳤다. 그래 놓고는 가뭄이 덮치자 지금까지 대형관정 98개, 소형관정 1천620개 등 용수원 개발에 250억원을 또 투입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더라도 관정들은 앞으로 또다시 잊혀지고 방치될 것이 확실시된다. 정확한 숫자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특히 소형관정은 관리에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안동시청 통계로는 역내에 소형관정이 1천200여개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농민단체 집계로는 와룡면 한곳에 있는 것만도 1천여개에 달한다.
어디에 몇 개 있는지도 모르는데 관리가 될 리 만무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가뭄 때마다 또 돈을 들여 뚫을 수밖에 없는 실정. 그러다 보니 지하수는 지하수대로 오염되고 지표수는 지표수대로 대책없이 고갈돼 버리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또 관정은 만들 때는 거액을 들이지만 관리는 농민들에게 맡겨 버림으로써 관리 소홀을 부추기고 있다. 관리에 너무 많은 돈과 일손이 들어 노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농촌에서 제대로 자율 관리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일을 하던 수리계 조차 거의 사라진지 오래됐다.
가뭄 때 쓸 물은 결국 지하수이거나 지표수이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지만, 지표수를 끌어 오기 위한 양수기 관리도 방치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시군청들이 적잖은 숫자의 비상용 양수기를 갖고 있지만, 실제 가뭄이 닥쳐 쓰려면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안동 엄재만(도산면 가송1리)씨는 "면사무소에서 양수기를 빌려왔으나 고장난 것이었고, 고쳐 오니까 웅덩이가 말랐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북도청 농정국 한 관계자도 "관정이나 양수기 등을 일년에 2회 점검하기는 하지만 실제 가동해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시군청이 갖고 있는 양수기 중 상당수는 젊은이 4~5명이 달겨 들어야 겨우 들 수 있을 만큼 무거운 구형이어서 더 문제가 되고 있다. 교체 필요성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지만 안동 경우 구형 122대 중 교체된 것은 겨우 10대에 불과하다. 시청은 올해 가뭄이 심각해진 뒤 뒤늦게 149대를 사들였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봉화.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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