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뭄현장 이모저모

가뭄이 100일 이상 계속되고 갈수록 피해 지역이 늘어 가면서 곳곳에서는 갖가지 사연들이 드러나고 있다.

◇주민 합심 다랑논 가뭄 해결=안동시 와룡면 가류1리 우메기마을 주민 50여명은 25년 전 안동댐이 건설된 뒤 평지 농토를 잃고 천수답에 매달렸으나, 올해 같은 100년만의 가뭄에도 끄떡 없이 다랑논 4만평의 모내기를 마쳤다.

조짐이 심상찮자 일찌감치 팔을 걷어 붙이고 4km 떨어진 안동댐에서 물을 끌어 올려 9개 골짜기 다랑논에 모두 물을 댄 것. 이 일을 지휘했던 박태환(64) 동장은 "힘들고 벅찬 일이라고 고개를 젓는 주민들을 수없이 설득해 가구당 10만원씩 공동 양수 경비를 거둬 가뭄에 미리 대처했다"고 말했다.

이 돈으로 지난달 중순에 이미 굴착기를 빌려 다단 양수 준비를 한 것. 그리고는 무려 7단 양수를 감행했다. 가파른 산등성이 10리길을 돌파한 셈. 수압 때문에 툭하면 찢어지는 호스를 메우느라 농민 2명씩 순찰대를 조직해 24시간 양수 라인을 보존했다. 드디어 12일엔 모내기를 전부 끝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다른지역 관정업체 활동못해=안동.영양.봉화 등 농민들은 관정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으나 경산 등 여타 지역 관정개발 업체들은 일감이 없어 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런 일은 남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등의 업자들 관행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이때문에 일부에선 강제 동원령을 내려서라도 이들을 가뭄지역으로 유입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산의 관정 개발업자 김현국(41)씨는 "북부지역에서 일감을 받고 싶어도 눈치 때문에 선뜻 못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수달 등 대수난=경북 북부지역의 주요 하천.저수지가 고갈되자 물고기는 물론 수달 등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의성 경우, 위천.미천.쌍계천.남대천.안평천 등이 이미 고갈돼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봉양면 신평리 장상철(32.건설업)씨는 "일부 물이 남은 보.소 등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했다. 이들 역시 1주일 정도 가물면 떼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하천이 고갈되자 물고기.개구리 등을 먹고 사는 수달마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미천 교량공사를 하는 영창건설 김동준(42) 대표는 "봉양면 구산리 쌍계천, 단촌 장림리 미천 등에서는 지난 3월 수달이 확인됐으나 최근엔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물고기를 먹는 청둥오리.잿빛두루미.물새 등도 마찬가지 상황에 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산림 해충 번창 조짐=가뭄에 무더위까지 겹치자 칠곡군 석적면 중지리, 지천면 영오.덕산리 등에는 최근 10여일 사이 오리나무 잎벌레, 대벌레 등이 550여ha에 걸쳐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달 중순 이후면 지난해 군내 전체 발생면적 800ha를 뛰어 넘을 전망.

이에 따라 칠곡군청은 14, 15일 이틀간 헬기로 항공 방제작업을 펴기로 했다

◇노인들 '물 나와라' 철야 대기=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노인들은 요즘 종일 암반관정 굴착현장에서 보내고 있다. 지난 10일 발주돼 지하 100여m 깊이까지 진행되고 있는 관정 뚫기의 결과를 보려고 아예 텐트를 치고 기다리고 있는 것.

이 마을은 논이 32ha에 불과한데도 12ha는 아예 모내기도 못했고, 모를 심은 20ha도 논바닥이 갈라진 상태. 최달현(66) 이장은 "다리가 불편한 노인, 기력 약한 노인네들까지 모두 나와 종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업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작업 감독 채종수(62)씨는 "수십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관정을 굴착했지만 이번처럼 애간장 타는 현장이 없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레미콘 업체들은 관정작업 기간 동안이라도 돕겠다며 물을 실어 날라다 주고 있다.

칠곡.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밭 옆 물 두고도 애만 태워=영덕에서 가뭄이 가장 심한 축산면 축산2리 박영택(42) 이장은 요즘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과수원 바로 옆 축산천에 물이 있지만 이것은 상수원이어서 말라 가는 사과.복숭아 나무를 보고도 고개를 돌려야 하기 때문. 더욱이 1천400가구가 원수로 쓰는 이 하천 물은 먹는 데도 모자라 며칠 후면 제한 급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서 박 이장은 3천500평 사과와 3천평 복숭아 수확은 며칠 전 결국 포기했다. 지하수가 고갈돼 스프링클러도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영덕.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냉혹한 행정=군위의 박정호(65.이흥면 이지리)씨는 1천여평 고추.지황밭이 타들어 가 속을 앓던 중 지난 10, 11일 이틀간 농업기반공사가 그 밭머리에 6인치짜리 관정을 뚫어 700t이나 되는 물을 뿜어내자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잠시. 농기공은 관정의 모터.발전기를 철수해 가버렸다. 일대 밭의 기반정비 사업을 위해 벌인 지하수 영향 조사를 위해 잠시 뚫었을 뿐이어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 "해갈되도록 1주일만 물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소용 없었다고 했다.

원망이 커지자 농기공 박상주(44) 지하수 담당은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하나 장비를 상주지역으로 가져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 박해근(70)씨는 "내 평생 처음 겪는 가뭄인데도 그저 원칙이나 따지고 있다니 화가 난다"고 했다.

군위.정창구기자 j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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