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24)

◈그루지야

그루지야행 국제열차는 오후 10시 아제르바이잔 바쿠역을 떠났다. 취재팀이 기차에 오른 건 출발 30분전, 그러나 출발할 때까지 객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객차안에서 취재팀은 잡담을 늘어놨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너스레였다.

'내전으로 불안한 나라', '한국인이 단 한명도 살지 않는 희귀한 나라' 이 정도가 취재팀이 그루지야에 대해 갖고 있던 지식의 전부였다. 바쿠를 떠난 열차는 20~30분이 멀다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열차가 고철덩이에 가까운데다 철길 갱목마저 썩어 쩍쩍 갈라져 있으니 늦다고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예닐곱살 됨직한 아이들이 객실앞 복도에 달린 라디오 스위치를 부여 잡고는 소리를 낮춰주는 대가로 돈을 달라니, 신경이 곤두서 뜬눈으로 밤을 새고 말았다.

열차가 그루지야 영토로 들어선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어둠이 걷히면서 창밖으로 구 소련시대 세워진 콤비나트가 그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쓰레기뿐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열차가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 취재팀을 내려 놓은 건 낮 12시30분, 600여㎞를 오는데 14시간이나 걸렸다. 분위기도 익힐 겸 시내버스를 탔다.

그런데 목적지인 호텔을 향하던 버스가 트빌리시의 중앙로인 케테완 차메불리 거리(4차로) 초입에서 갑자기 샛길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도시 전체에 5일째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했다는 것이 운전기사의 설명이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자체 발전시설이 없다보니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러시아에 전기료를 주고 전기를 사오기는 하는데 체납된 요금이 워낙 많다보니 러시아가 전기를 보내주면 불이 들어오고 끊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부 대형건물들은 자체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러시아가 공급하는 도시가스에 의존하다보니 실로 속수무책이 아닐 수 없었다. 전체 인구 500만명 중 200만명이 사는 수도가 이 지경인데 지방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 했다. 아파지아 학살(상자기사 참조)로 러시아를 원수로 여기는 그루지야지만 아직도 그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루지야 경제의 주 소득원은 포도재배다. 12만㏊의 포도밭에서 한해 6만~7만t을 생산, 그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한다. 그러나 이같은 생산량은 과거 전성기였던 1990년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또 장기 내전으로 국가신용도마저 추락해 근년들어선 수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루지야 최대의 포도주생산회사인 '트빌비노'사의 노다르 슈파타쉬비리 대표는 "최근에는 포도주를 담을 병이 없어 생산을 못할 정도로 포도주 생산업체들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철도에 대한 신규투자란 생각조차 못할 지경. 트빌리시 가르다바니아역에서 터키와 접한 바투미까지 총연장 470㎞의 철도가 있다. 삼트레디아에서 바투미까지 100㎞, 포치에서 바투미까지 70㎞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복선, 전철화되었다고는 하나 열차 평균속도가 40㎞를 넘지 못한다. 그래도 철도의 물류부담률은 60%에 달해 1999년 950만t, 지난해에는 1천150만t을 수송했다.

그루지야 철도회사 킥나제 마무리 대표는 "산악지역이 많다보니 철도운행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하지만 철도의 물동량 처리능력이 연 2천500만t이라 시설엔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글 :김기진기자

사진: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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