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농촌 살리기 102조 투자
UR이 파도로 덮치자 국가는 1992년부터 102조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할 거액을 농업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의 농업은 살아 난 것일까.
"그동안의 일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102조 첫해에 무려 20억원을 들여 최첨단 페트필름 원판(경질판) 온실 '경산 화훼 종합시범 단지'를 출범시켜 전국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김성식(58·진량읍 부기리)씨. 그의 지난 10여년은 바로 102조의 10년사이기도 하다.
당시 정부는 하우스 화훼가 경쟁력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 대규모 시설 지원에 나섰고, 그 시범 사업자로 선정된 사람이 김씨였다. 정부 지원 60%, 융자 30%, 자부담 10%의 분담 비율로 14억원 규모의 투자가 결정됐다. 이 돈으로 김씨는 1만평 땅에 미국식 화훼 재배 시설인 경질판 온실을 지었으며, 그러고도 모자라 자부담으로 6억원을 더 넣었다.
백합에서 출발했던 김씨는 2년 뒤 장미로 바꿔 일본 수출까지 하며 "그런대로 잘 나갔다"고 했다. 그의 농장은 선진농업의 견학 명소가 됐고 관광 명소도 됐다. 그러나 갈림길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은 1997년의 IMF사태. 은행의 빚 독촉과 높은 이자 부담은 가혹하기 그지 없었다. 시장도 위축됐고 수출마저 어려워져 3중고에 포위됐다. 그리고 지난해엔 결국 문을 닫았다.
농장은 다른 사람 손에 넘어 갔다. 지금은 거액을 들인 온실 시설도 철거해야 될 상황. 얼마 전 기자가 찾아 갔을 때, 화려한 장미꽃으로 가득찼었다는 온실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냉방 시스템이 가동을 멈춰 온실은 그야말로 한증막이었다. 미처 뽑아 정리하지 못해 그냥 버려진 장미는 바싹 타들어 손으로 비비니 가루로 변했다.
40℃가 넘는 이 온실에서 어렵사리 만난 김씨는 말이 없었다. 어색하게 웃음 지을 뿐. 한참을 채근하고야 나온 말은 "24시간을 보냈던 꽃밭인데…"라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꽃 재배를 권하고 또다른 쪽에서는 꽃 사용을 규제하는 가운데 은행은 IMF 핑계로 고금리에다 빚독촉까지 해대니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정부 말을 믿는 농민은 망하고 거꾸로 간 농민은 괜찮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칠곡 왜관의 봉계농산은 김씨보다 좀 늦은 1995년에 1만4천평 땅에 6천평의 유리온실을 지어 장미꽃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4농가가 영농조합을 설립, 정부지원 50%에다 융자 30%, 자부담 20%로 36억원을 만들었지만, 결국엔 50억원쯤 들어갔다고 했다.
IMF나 화환 규제, 내수 위축 등이 봉계농산이라고 비켜갈 리 없는 일. 위기가 몇차례나 거듭 닥쳤다. 다행히 70% 정도나 수출하고 장미 품종 개발에도 성공하는 등의 전략으로 한숨을 돌렸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달라졌지만, 그 전에는 줄곧 적자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변해 앞날에 자신이 없는데다 물류비 지원액도 갈수록 줄어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권순만(40) 이사는 "이때문에 작년부터는 일본에 비행기 대신 배로 수출하느라 하루 더 걸려 신선도가 떨어짐으로써 경쟁력 유지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한때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던 시설농이 농장 문을 닫는 등 정부의 지원이나 융자를 받은 도내 4, 5개 시설재배 법인이나 농장의 소유권이 바뀌었거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북도청 유통특작과 박재종 과장은 "초기의 대규모 투자 원예 시설 농가들은 선진국 수준의 시설을 도입하느라 과중한 금융 부담을 졌고 IMF라는 악재까지 겹치자 상당수 좌초됐다"고 했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농업기계화, 시설 현대화사업도 많은 오류를 남겼다. 특히 △생산기반 정비 △영농규모화 등 사업과 맞물려 1993년부터는 농기계 반값 공급이 시작됐으나 오히려 농가 부채를 늘리는 왜곡된 결과에 도달하고 말았다.1만6천평의 논농사를 주로 하는 농업경영인 경북연합회 장철수 회장(의성군 다인면)은 "농기계 반값 공급이 취지와 달리 농민 부채만 증가시킨 채 생산업체나 취급점에게만 엄청난 이윤을 안겨줬다"고 단정했다. 반값에 준다는 말에 홀려 멀쩡한 기계를 바꾸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기종을 구입했다는 것. 그는 아직도 20년 된 경운기와 18년 된 트랙터를 쓴다고 했다.
성주군 초전면 의산리에서 논 2천600평을 임차해 농사지으며 1978년부터 트랙터 농사일 영업을 하는 백성일(47)씨도 같은 말을 했다. "연중 며칠 쓰지도 못하는 데도 값비싼 농기계를 구입한 사람이 적잖고, 소형보다 대형을 선호하느라 빚에 몰린 농민이 한둘 아닙니다". 그는 트랙터를 영업용으로 운용해 연 1천500만원쯤 번다고 했다.
반값 정책 이후 농기계 보급은 해마다 늘어, 1992년 16만4천여대에서 97년엔 27만8천여대로 늘었다. 그 사이 정부가 이를 위해 지원한 자금 규모도 92년 4천989억원에서 97년(반값 공급 마지막 해)엔 8천191억원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때문에 농가 부채 중 영농자재 구입 같은 생산성 부채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 농가경제를 짓누르는 핵심이 됐다.
반값 공급은 잦은 고장 및 부품 구입난과 맞장구치며 5~8년인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새 것으로 바꾸는 '중간 교체'를 부추겨 대량의 폐농기계를 배출해 내는 결과도 빚었다. 경북도청 류일화 농업자재 담당은 "그동안 도내 폐농기계 수거실적은 1995년 180대에서 98년 6천400여대로 급증했고, 1999년, 2000년에도 3천600대 및 4천800여대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칠곡군 왜관읍 삼청리에서 1995년부터 '경북도 폐농기계 처리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운(51)씨는 "반값 공급으로 중고품이 많이 나와 한때 아프리카·동남아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1차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 평가작업에 참여했던 농촌경제연구원 김종호 박사는 "외형적 성과에도 불구, UR이후 농촌을 살리기 위한 102조사업의 추진에서는 준비 부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다"면서, "중장기 계획이나 관리가 철저하지 못해 투자에 비해 효과가 적은 것같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처음 시행하다 보니 효율적이지 못한 곳에 돈이 낭비되기도 했다는 것. 한농 장철수 회장은 "정부의 정책이 일관되지 못하고 사업투자의 우선 순위 책정이나 투자 뒤 관리 등에 문제가 많았다"고 진단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이창희기자 l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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