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홀대받으니 가뭄대책도 소홀하다. 논바닥이 거북 등짝처럼 쩍쩍 갈라터진 지가 오래고 기상대에서는 세기적 왕가뭄이라고 야단인데, 정부의 대책은 늘 그렇듯이 굼뜨기 짝이 없다. 뒤늦게 총력체제를 갖추어 가뭄극복에 나서겠다고 뒷북을 치고 있다. 정치권이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극심한 가뭄은 뒷전으로 밀쳐 두었던 모양이다. 가뭄을 핑계로 민주노총 파업을 저지하고 국정쇄신 작업도 뒤로 미룰 작정이다. 정치권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비보다 가뭄이 더 고맙게 된 셈이다. 비가 오면 절단 날 뻔했다. 오죽하면 '가뭄이 김대통령 살렸다'고 할까.
보리타작도 비가 오면 절단이다. 모내기는 비가 올수록 좋지만 보리타작은 볕이 쨍쨍 나야 한다. 가뭄은 계속되고 햇볕은 작열하지만 보리타작 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보리농사를 짓지 않으니 보리타작 소리를 부를 까닭이 없다. 타작소리의 신명이나마 되살려 보자.
어절씨고 웅헤야
잘도 한다 웅헤야
단둘이만/ 하드래도
열쭘이나/ 하는 듯이
볕이 좋은 날 마당에 보릿단을 펴서 널어두고 도리깨로 보리이삭을 때려서 보리의 낱알을 떨어뜨리는 일이 도리깨질이자 보리타작이다. 도리깨질은 두세 사람이상 여럿이서 더불어 한다. 상일꾼이 목도리깨꾼 노릇을 하는데, 앞소리를 메기며 도리깨로 보리를 끌어들이거나 바깥으로 쳐내는 일을 맡아 하며 일을 이끌어간다. 종도리깨꾼은 목도리깨꾼과 마주 서서 뒷소리를 받으며 지시대로 도리깨질을 따라 한다. 그러자면 보리타작은 최소한 두 사람은 되어야 노래도 메기고 받으면서 타작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 둘이서 하더라도 열 사람이나 함께 하듯 신명을 내서 소리도 하고 도리깨질도 하자는 것이다.
팔구 월에/번종해서/ 그해 삼동
다 지나고/ 익년 이월/ 제초하고
삼월 지나/ 사월 들제/ 사월남풍
대맥황으로 웅해야 …
목도리깨꾼이 '팔구월에'하고 메기면 종도리깨꾼이 '웅-해야'하고 받는다. 도리깨질을 하면서 부르므로 흥겹고 빠른 것이 특징이다. 후렴은 '옹헤야' '호헤야' 등 다양하다. 보리타작을 하면서 파종에서부터 생육과 수확, 타작, 저장에 이르기까지 보리의 일생을 노래한다.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면, 구시월에 갈아서 겨울을 지나고 이듬해 3월에 보리밭 매기를 하면 4월에 키가 다 자라 5월 남풍에 보리이삭이 누렇게 익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푸른 잎과/ 푸른 종자/ 죽은 듯이
변해져서/ 황앵 같은/ 황색되어
오뉴월에/ 수확하야/ 웅해야 …
푸른 보리 잎과 열매가 죽은 듯이 변해서 누렇게 익은 모습을 노란 꾀꼬리에 견주어 노래한다. 6,7월이 되면 보리를 베고 타작을 하게 된다. 보리의 일생에 관한 정보를 자세하게 알려주는 교술적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일노래에서 더 긴요한 것은 신명을 돋우는 가운데 일을 지시하며 일하는 법을 일깨워서 일의 능률을 올리는 것이다.
다리에다 힘을 주소
허리를 꾸부리소
여기 있다 여기를 보소
저기 있다 저기를 봐라
눈을 똑똑이 뜨고 보소
종도리깨꾼은 도리깨질이 아직 서툴다. 허리를 뻗뻗하게 세운 채 도리깨만 돌려 타작을 하고 있다. 그래서는 힘도 실리지 않고 신명도 나지 않는다. 목도리깨꾼이 도리깨질 요령을 일깨워 준다. 다리에다 힘을 주고 허리도 더 굽히라고 한다. 그래야 도리깨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힘만 들인다고 타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리 이삭이 있는 곳을 잘 보고 정확하게 때려야 한다. 따라서 눈을 크게 뜨고 보리이삭이 있는 곳을 봐가며 여기도 때리고 저기도 때려라고 일러준다.
우리가 오늘 이래 하고
팔이사야 아프지마는
저녁때 되면 술을 묵고
동네사람이 다 모아든다
그때야 우리 한분 하자
이리저리 맘 묵지 말고
한맘 한뜻을 맘을 묵고
보리끝만 잘 쳐두가
모내기를 하면 허리가 아프나 보리타작을 하고 나면 팔이 아프다. 팔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저녁때가 되면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한 차례 춤판을 벌이며, 종일 일을 하면서 결린 몸을 푸는 것이다. 그 뒤풀이를 생각하면서 딴 마음 먹지말고 한마음 한뜻으로 보리 끝을 잘 두들겨 달라고 한다. 보리이삭을 두드려야지 보릿짚을 아무리 두드려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넘어간다/ 여기 쳐라/ 여기도 치고
쿵절쿵절/ 잘 넘어간다/ 아이고지고
이 단 넘어/ 거기다 두고/ 다른 단은
또 쳐뿌자/ 아이고지고/ 옹헤야
신명이 오르면 도리깨질이 더 빨라지고 노래도 급격해진다. 후렴도 '옹헤야'로 받는다. 긴 설명이나 지시가 필요 없다. '여기 쳐라/ 저기 쳐라' 하고 때릴 곳만 지시한다. 일의 속도가 붙고 한 단 두 단 보릿단이 넘어가는 모습이 척척이다.
꼴두 밑/ 한 무리/ 끝바지
자 때레라/ 꼴뚜 밑/ 한 무리
빨리 때레/ 어이어이/ 떼레라
군말이 전혀 없다. 후렴도 '떼레라'를 반복한다. 일에 몰입하면 제 정신이 아니다. 무아지경에 빠진다. 무당이 굿판에서 엑스타시 상태에 빠지듯이, 일꾼들이 일을 하면서 신명이 극도로 오르면 같은 상태에 이른다. 노래도 숨가쁘다. 꼭 필요한 낱말만 외마디처럼 주고받는다.
아전의 보린강/ 살살 긴다
양반의 보린강/ 거칠다
중놈의 보린가/ 몽굴몽굴
보리의 묘사도 가지가지다. '저놈의 보리는/ 아전의 보린강/ 팔팔 뛰네' 그러기도 하고 '이놈의 보리는/ 양반의 보린강/ 수염도 길다'고도 한다. 타작마당의 보리를 아전과 양반의 행실 또는 행태에 비유한다. 따라서 도리깨질을 하며 아전이나 양반에 대한 평소의 원한을 풀기라도 하듯 힘을 올려서 바스라지게 두드린다.
빌어먹던 놈의 거
비가 맞아가주 더구나
빌어먹던 거 떨어지나
쌍놈의 거 어이차
빌어먹던 놈의 거
우째 이리 못 때리나
종일 타작을 하다 보면 몸도 어지간히 지친다. 더군다나 보리도 비가 맞아서 어지간히 도리깨질을 해도 쉽사리 보리이삭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빌어먹던 놈의 것'이나 '쌍놈의 것' 하고 욕지거리가 터져 나온다. '우째 이리 못 때리나' 하고 타작꾼 원망도 절로 나온다.
하늘을 원망하던 민심이 뒷북치는 가뭄대책보다 가뭄핑계 대는 정부가 더 얄밉다. 대통령이 약속대로 국정쇄신 대책이나 속시원하게 밝히면 정치적 갈증이라도 풀릴 것인데 굼뜨고 더딘 데다가 엉뚱하게 가뭄 핑계까지 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 치며 노닥거리던 김종필은 행정신고도 하지 않은 채 은밀하게 선친묘를 이장하였다고 한다. 자민련 인사들은 까놓고 '왕기가 서린 명당'이란다. 농민과 공무원들이 물줄기를 찾아 강바닥을 파느라 정신 없이 땀을 흘리는데, 집권여당 명예총재란 이는 이장 묘지를 파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헐떡거린다. '빌어먹던 놈의 거/ 우째 이리…!' 정말 김종필은 아무도 못 말리는가. 하기야 대통령도 대선 전 선친묘지 이장을 했는데, 누가 누굴 나무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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