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신장질환 33세 엄마 장성자씨

33세의 젊은 엄마 장성자씨와 아홉살짜리 아들 명준이는 상인동의 한 영세민 아파트에서 산다. 걸핏하면 119 구급대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집 앞에서 멈추고 엄마는 병원으로 실려간다. 엄마가 병원으로 실려간 밤,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는 홀로 잠이 든다.

엄마는 21세 때부터 신장 질환을 앓았다. 오랜 세월 투석을 받아온 몸에는 더 이상 바늘 꽂을 곳이 없다. 퀭한 눈, 팔과 다리는 온통 검은 멍 자국 투성이다. 팔에는 혈전이 혹처럼 부어 올라 있다. 혈전 제거 수술만 7번 받았다. 늘어져 쓸모가 없어진 혈관 대신 인조 혈관을 군데군데 심어야 했다. 도대체 몸뚱이에 몇 번이나 칼을 댔는지 셀 수조차 없다. 망가진 몸에서는 7년 동안 단 한 방울의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몸의 칼슘은 날마다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 이제 시시각각 덮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힘조차 없다.

그래도 젊은 엄마는 살고 싶다. 아니 살아야겠다고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다. 벌써 50번도 넘게 송현동 119 구급대 신세를 졌지만 정신을 차린 후에는 다음 번 수고를 미리 부탁해 둔다.

젊은 엄마의 꿈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정을 갖는 것이었다. 새 엄마의 모진 구박을 견디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나와 산업체 부설 기숙학교엘 다녔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명준이는 엄마 없는 아침이 낯설지 않다. 아침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혼자 밥을 챙겨먹고 학교로 간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온다. 혹시 엄마가 집에 와 있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창 뛰어 놀기 좋아할 나이지만 명준이는 좀처럼 밖에서 놀지 않는다. 엄마가 없는 날엔 홀로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가 집에 있는 날엔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다. 명준이는 텔레비전 야구를 유난히 좋아한다. '올해도 홈런 많이 치겠습니다' 목소리만 듣는다면 이승엽 선수가 온 것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삼성라이온즈 김응룡 감독의 흉내를 낼 땐 배까지 쑥 내밀고 앉는다. 아이의 소원은 이승엽 선수에게 공을 한번 던져 보는 것이다.

아홉살짜리 명준이의 그림 일기장은 엄마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가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내일 퇴원하신다, 오늘 나는 무지 기쁘다. 오늘은 운동회 날, 어머니가 오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어디에 그런 깊은 설움을 숨겨 놓았을까 싶을 만큼 아이는 맑은 얼굴을 가졌다.

아이의 맑은 얼굴이 차츰 시들어가는 엄마에게는 오히려 설움이다. 산과 나무, 신선한 아침공기와 새벽 창안을 살며시 훔쳐보고 지나는 어린 별, 누구도 감히 나서기를 꺼려하는 폭염속의 대지…. 어린 아들과 함께 걷고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게 무슨 희망이나 꿈이 있겠습니까. 자꾸 미련이 생길까 두렵기만 합니다". 젊은 엄마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말이 아니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끝내 소망을 말하지 않았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도 젊은 엄마가 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고아로 자란 것도 모자라 어린 아들에게 못마땅한 운명을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는 장성자씨. 그는 어린 아들과 함께 걷는 이 길이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별이 무서운 줄 아는 명준이는 아마 오랫동안 울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별이 그렇듯 차츰 익숙해질 것이다. 신앙이 없는 기자는 집을 나서면서 이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의 동행이 길게 이어지게 해달라고 염치없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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