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함께 공무원 생활을 하는 김상복(32)씨 부부의 지난 1년은 맞벌이의 비애를 뼛속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김씨는 태어난지 한 달이 갓 지난 젖먹이를 대구에 사는 장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낯선 서울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나 믿고 맡길 육아시설이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매주 아내가 주말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갔고, 김씨도 틈만 나면 처가 문턱을 넘나들었다. 처가에 왔다가 떠나는 일요일 오후, 부부는 마치엄마아빠를 붙잡으려고 하는듯 우는 아이를 뒤로 한채 귀경길에 올라야만 했다.김씨 부부는 지난 달 경기도 과천의 아파트로 이사한 뒤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를 키워 줄 아주머니가 있어 직장과 멀리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과천으로 옮겼다.
김씨는 "맞벌이 하며 애 키운다는 게 이렇게 마음 아픈지 짐작도 못했다"며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가정이 경제활동을 하는 전체 가정의 40%에 이른다. 불완전한 고용상태, 임금삭감 등 경제적 상황만을 보더라도 맞벌이는우리 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육아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여겨지고 있다.이때문에 맞벌이 부부들은 육아문제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두 자녀를 둔 박모(40·회사원·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 부부는 매일 아침 6시부터 2시간 동안 출근 준비하랴, 자는 아이 깨워서 씻기고 밥 먹이고 하느라 난리다.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살난 아들은 유치원 교사가 출근길에 데리고 간다. 유치원 통학버스가 있지만 부부가 출근한 뒤 아파트단지에 도착하기 때문에 미리 유치원 교사에게 아이의 통학 도움을 부탁해둔 것이다. 오후 2~3시쯤 유치원 일과가 끝나면 아들은 그때부터 유치원 교무실에서 또래의 원장 선생님아들과 엄마가 퇴근하는 오후 6시까지 함께 지낸다. 아이가 아플 땐 미안함을 무릅쓰고 의료보험증을 유치원에 맡긴다. 세살부터 2년 동안은 비슷한 방법으로 놀이방에 맡겼다. 첫 딸(초등 3년)은 유아시절 3년간을 외할머니 품에서 보냈다."부부가 함께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육아시스템'을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생면부지의 유치원 선생님이나, 이웃들에게 부탁을 해 필요할때마다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박씨의 '육아 처세술'은 열악한 보육환경 속에서 맞벌이 부부의 생존전략을 짐작케 한다.
"부모의 사랑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아이들인데 그나마 돌봐주는 아주머니마저 자주 바뀌어 걱정입니다".남편과 함께 군부대에 근무하는 이경선(29·여·대구시 동구 지묘동)씨는 네살된 딸과 두살난 아들을 이웃의 30대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있다. 친정이 대구에있지만 매일 오가기가 불편해서이다. 이씨는 1년 넘게 친자식처럼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가 언제 그만 둘지 몰라 초조한 심정이다. 딸아이의 경우 이번이 네번째 아주머니. 아이들이 어렵게 정을 붙인 아주머니들이 이사를 가거나 출산, 취업 등의 이유로 그만두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 3, 4학년이 될때까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씨는 "부모에게 한창 어리광 부릴 아이를 떼놓고 출근하는 것이나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점도 힘겹지만 아이를 잘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최모(30·여·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는 육아문제로 직장을 포기한 경우.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 다녔던 최씨는 3년전 출산 후 두달동안 휴직한 뒤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겼다. 시어머니 덕에 한동안 큰 걱정없이 직장을 다녔지만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1회씩 돌아오는 야근과 회식 등에빠질수 있도록 회사측과 동료의 배려를 받았으나 직원 수가 줄면서 더이상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퇴근 후 시댁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집안 청소와 식사 준비 등 집안 일로 매일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건설회사에 다녀 출장이 잦은 남편에게 가사 분담을 요구할 수도 없었고, 더욱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최씨는 올해 초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최씨는 "20, 30대 여성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대부분 육아문제일 것"이라며 "직장내 보육시설과 공립 보육기관의 확대가 맞벌이 가정에게는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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