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는 당초 예정됐던 패전 기념일인 15일을 피하기는 했으나 총리로서의 공식참배라는 국제적 비난이 가중될 전망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를 전후해 담화문 발표와 기자회견을 통해 태평양전쟁의 피해국인 아시아 국가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하고 한국과 중국과의 외교관계 복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고이즈미에게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시련과 장애물들이 남아있다.
◇공식참배 여부=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공식적인 것이냐, 사적인 것이냐를 가늠하는 기준으로는 참배차량, 방명록 기재사항, 참배료 등 3가지가 지적돼 왔다.
이날 고이즈미 총리는 비록 신도(神道)의식을 따르지는 않고 참배료 역시 사적비용임을 밝히기는 했으나 대신 관용차를 타고 신사를 방문했으며 방명록에는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적었기 때문에 공식참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때 총리관저에서는 공식참배를 비켜가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가 개인차를 이용해 야스쿠니에 가서 방명록에는 '중의원 고이즈미'라고 적고, 참배료는 자신의 호주머니 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조기참배 배경=고이즈미 총리는 참배에 앞서 후쿠다 장관을 통해 담화를 발표, 이른바 '국익'을 고려해 패전기념일 참배를 피하고, 이날 앞당겨 신사참배에 나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중국으로부터 참배일자를 변경해줄 것을 요청하는 최후통첩을 '조건부 수용'하면서 자신의 체면을 세우는 대신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조기 참배'의 카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한국은 참배자체 중단을, 중국은 가능하다면 16일 이후 참배를 종용해 왔다는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8.13 야스쿠니 참배'는 '아시아 무시외교'를 다시 드러냈다.
고이즈미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나는 상황이 허락하면 가능한 한 빠른 기회에 중국과 한국의 요로의 인물들과 무릎을 맞대고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평화, 발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동시에 앞서 언급한 대로 나의 신념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언급, 관계복원 의지를 드러냈다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자신의 신사참배를 강행한 이후인데다 또 12일부터 무려 보름여간의 여름휴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한.일, 중.일 관계 복원을 희망한 그의 담화내용은 외교적 수사에 그친 '말장난'이란 비난을 사고 있다.
◇외교적 마찰=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파문과 남쿠릴 열도에서의 한국어선의 꽁치조업 등 한.일간 외교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한.일 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또 중국 역시 한국과 같이 일제침략을 경험한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문제도 그냥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외교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이 내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2002년 월드컵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걱정스런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일본내 파장=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국내적으로도 △일본내 국론분열 △자민당내 자신의 입지약화 △구조개혁에 대한 신뢰추락 등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격적인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싸고 일본은 찬반양론으로 갈린 상태이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사설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담화를 통해 아시아 국민에게 사과한 점을 지적하면서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이웃 나라의 불신을 초래할 참배는 포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보수 산케이(産經) 신문은 사설을 통해 "국민은 강한 의지를 지닌 지도자의 출현을 원했는데, 외압에 굴복해 참배를 앞당김으로써 국민사이에 불신이 확산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초 예정됐던 패전기념일(15일)을 이틀 앞당겨 조기 참배를 함으로써 고이즈미의 지지세력이었던 보수진영으로 부터 적지 않은 불만을 사고 있다.
자민당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8.15 신사참배를 관철하겠다고 모임까지 만든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의원 등은 "총리가 왜 일정을 앞당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실망스럽다"고 반발했다.
또 '성역없는 구조개혁' 추진을 공언해온 고이즈미 총리는 당초 약속했던 8.15 참배가 무산됨으로써 신뢰도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특히 부실채권 처리와 특수법인 개혁 등의 구조개혁 작업은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내 저항을 누른 상태에서 추진해 온 것이지만, 이제 자민당내 반대세력이 힘을 얻게 돼 개혁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류승완 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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