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루과이 라운드 10년 우리농업 어디로 가고 있나-(12)농공단지

"기계소리 멎는 곳이 한두 군데 아닙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요". 동해안 국도변 포항 청하농공단지의 겉모습은 반듯했다. 도로들은 잘 닦여 있었고 공단은 공장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들어가 본 안 모습은 전혀 달랐다. 차압 딱지, 굳게 닫힌 철문, 잡초 우거진 공장뜰이 즐비했다.

공장부지가 2천200평이나 돼 가장 컸다는 판넬 공장 입구엔 이 공장이 이미 차압돼 있음을 알리는 붉은 글씨가 살벌했다. '담보물을 무단 반출·훼손·멸실시키면 형사 처벌됩니다'. 드넓은 주차장은 휑덩그렁했고, 굳게 잠긴 철문 너머에는 적막감뿐이었다. 지난 6월부터 경비를 맡았다는 김영한(72)씨는 "놀리기 너무 아까운 공장"이라고 했다.

그 바로 옆 자동차 부품 공장도 마찬가지였고, 화학제품 공장 철문에 붙여진 경고문은 오래 됐는지 색깔마저 바래져 있다. 그 공장에 전기를 댔을 전신주에서는 변압기가 떨어져 나간 채 끊긴 전선만 달랑거렸다. PVC 공장 수십억짜리 기계들 위에는 먼지가 뽀얗다.

이 청하공단은 1990년에 국비 보조금 10억9천만원 등 47억9천만원을 들여 기반을 조성한 것. 평당 분양가가 20만8천원에 달했지만, 16km만 가면 포항이라 입주 희망 31개 중 골라 22개 업체를 입주시켰다. 분양률 100%. 하지만 시청 담당자 이병철씨는 "만 10년이 지난 지금 가동 중인 공장은 꼭 절반인 11개"라고 했다.

공단 관리사무소 신병철(60) 소장은 야간 작업 공장이 많이 줄어 가로등을 요즘은 절반만 켠다고 했다. 사무소 직원 3명의 인건비를 못대 공단협의회 이면 회장(연창철강 대표)이 부담한다는 것. 경비원은 1명으로 줄여 밤에만 근무시키며, 공동 식당 역시 한때 이용자가 150명을 넘었으나 3분의 1로 감소해 덩달아 경영난이라고 했다.

입주 1세대인 이 회장은 "일부 땅값 상승을 노리는 등 다른 생각 때문에 입주한 경우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었다"고 했다. 지금 이 공단에는 입주 1세대 공장이 5개뿐이고, 어떤 공장은 주인이 4번이나 바뀌기도 했다는 것.

거기만 그런 것일까? 문경 산양산업단지. 1990년 국비 보조 13억원 등 28억5천만원을 들여 만든 이 농공단지 역시 다를 바 없었다. 20개 입주업체 중 8개가 휴폐업. "대체 입주자 찾기도 쉽잖다"고 시청 이성원씨가 말했다.

여기서도 몇억원 짜리 장비를 갖춘 석재 공장이 중국산 저가 공세 등에 밀려 최근 경매로 주인이 바뀌었다고 했다. 감정가 3억7천만원 이상의 외제 장비는 수백만원에 고철 처분됐고, 3천700평 공장 터에는 폐자재들이 을씨년스러웠다. 대신 입주 예정인 세원스틸산업 정화진(47) 부장은 "앞으로는 판넬을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석재 기계는 이렇게 해서 생명을 끝낸 모양이었다.

그 외에 국회의원이 관련됐다는 업체도, 대구의 어느 학교 재벌 며느리가 대표였다는 업체도 숨소리를 멈췄다. 공단협의회 황원현 회장(동양산업 대표)은 "경기 하락도 중요하지만 보다 깊은 근본에는 경영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농공단지의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인력난"이라고 했다. 업체 대부분이 인력난을 호소, 협의회에서 스카우트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인력 채용 정보교환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

봉화군청은 또다른 일로 머리 아파 했다. 제2 농공단지를 만들었으나 평당 10만6천원에 불과한 분양가에도 입주업체가 없다는 것. 담당자인 유병찬(37)씨는 "힘 들여 산 깎아 공단 만들어 놨더니 들어 오겠다는 업체가 없다"고 답답해 했다. 국비 13억원 등 36억원을 들여 조성해 1993년 분양했던 1단지에 12개 업체가 입주, 지역민이 160여명이나 채용돼 연간 13억원의 노임소득을 얻고 군청도 3천여만원씩의 세금 수입을 올리길래 2단지까지 욕심을 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무려 58억5천만원이나 들여 4만5천평이나 되게 3년 전 닦아 놓은 2단지에는 겨우 금고공장 한개가 외롭게 가동하고 있었다. 그 외엔 또다른 두 업체가 입주를 준비 중일 뿐, 나머지 공장 터는 잡초밭이 돼 있었다.

26억원을 들여 1997년에 조성한 문경 가은단지의 분양률도 여전히 56%를 밑돌고, 더욱이 가동 업체는 한 개뿐이었다. 다른 업체도 한개 있었지만 문을 닫았다고 했다.

경북도청 김용삼씨는 "IMF사태에다 인력 확보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입지 여건 등 때문에 곳곳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농림부 농촌정비과 남궁박·김동근씨 등은 "그런 문제들 때문에 입주업체 100% 확보 등 신규 조성 지원 기준을 강화했다"며, "전국적으로는 일부 새 수요가 있어 올해 또 4곳이 지정될 예정"이라고 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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