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합데스크-멋과 훈훈함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한.중.일 3국은 각자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사상적 전통에 있어서 한국은 '가을 하늘과 같은 멋'을 따른다고 한다. 반면 중국은 '어질다'의 인(仁)을, 일본은 정수(精粹)와 우아(優雅)를 속성으로 하는 수(粹)를 추구한다. 민족성에 있어서는 '훈훈한 마음씨'가 한국적가치다. 이에 비해 중국은 '너그러운 마음씨'를, 일본은 '싹싹한 마음씨'를 특질로 한다. 이상적 인간형도 서로 다르다. 중국이 군자(君子)를, 일본이 '사무라이'를내세우면 한국은 '선비'를 이상으로 여긴다.한국의 선비는 어질고 순한 속성에 배움(學)과 덕(德)을 보탠 사람으로 정의된다. 정의와 지조도 선비의 조건이다. 현대적으로는 수양되고 겸손한 '도덕적 능력인'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그저 배우고 사람만 좋은 것이 아니라 현실능력이 있는 도덕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작태가 이상스럽기 짝이없다. 케케묵은 '친일논쟁'으로 사회이목을 어지럽히고 있다. 논쟁이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거나 미래지향적인 것이라면 나무랄 일이 아니다.나라망치는 소인배 정치

그러나 일제시대에 검찰 서기를 지냈느니, 군복을 입었느니 하는 소꿉장난 같은 이야기들뿐이다. '일제시대에 한국에서 살았으면 친일'이라는 식의 어거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전제라면 친일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도 아닌 일로 멱살잡이를 하고 서로의 얼굴에 오물을 끼얹는 잡한(雜漢)들의모습이다. 깊어지는 나라의 민생고는 안중에도 없이 '남의 밑천 까발리기'에만 관심을 두는 인상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논쟁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금이 그런 한가한 때라는 말인가. 얼마 전 있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부친 생가 개축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해당 가문의 일일 뿐, 남들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이런 좁다란 가정사를 놓고 '대권병 환자' 운운의 논평을 낸다는 것도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 대상이 세인의 주목을 받는 야당총재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근에는 여당 중진의원이 안 해도 될 말끝에 야당총재를 '놈'으로 내뱉다 영수회담 개최가 덜커덩거리고 있다. 욕설의 당사자는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으니 꼴사나운 모양새가 됐다.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잘아졌는가. 바늘 하나 꽂을 여유도 없이 남을 짓밟으려드니 말이다. 정치는 예다. 비록위선적이긴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를 지키는 것이 자신과 국민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서로 헐뜯고 싸우는 부부가 자식들로부터 존중을 받기는 어렵다.자식들에게 불신만 가르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에 권위가 없어지면 질서가 무너진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이민행렬이 이어지고,각종 시책들이 구멍나고, 사회 각층이 싸움박질에 몰두하는 혼란이 있을 뿐이다.최소한의 멋과 예의는 지켜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에는 중국이나 일본왕조실록에 없는 한가지 특별한 기록양식이 있다. 사론(史論)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후대의 '피바람'이 두려워 이런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조선의 사관(史官)들은 사론을 통해 왕이나 대신들의잘못을 낱낱이 역사에 남겼다. 그래서 왕은 물론 대신들까지 역사기록을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했다. 대한민국실록 2001년 8월 조(條)에는 이런 글이 실림직하다. 나라의 어른들이 도량이 좁아 조야(朝野)가 화합하지 못했다. 정치가 멋과 훈훈함을 잃어 국민들의냉소를 샀다. 제대로 된 선비가 없어 대북.대외.대내 정책에서 실정이 많았다. 경제공황, 정치공황 속에 아류들의 어지러운 언사로사회가 조각나고 민심이 크게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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