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미국 대통령을 몰락시켰던 1972년 '워터게이트',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하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1991년 구(舊) 소련 공산 쿠데타 세력의 도청, 지난해 세계통신 감청망 '에셸런(Echelon)'파문, 도청을 빌미로 한 미국과 러시아간의 외교관 무더기 맞추방, 페루 후지모리 정권의 야당 정치인 매수 녹화테이프…. '훔쳐듣기'와 '훔쳐보기'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 '훔쳐보기'와 '훔쳐듣기'는 때로는 결정적인 증거와 정보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때로는 용서받지 못할 파렴치 행위로 규정된다. 그러나 투사가 아닌상식인에게 '훔쳐보기'와 '훔쳐듣기'는 못마땅하다. '이 나쁜 인간들, 왜 남을 훔쳐보는 거야' 하고 소리쳐보지만 상대는 히죽히죽 웃을 뿐이다. 그 웃음은 '당신은 왜 훔쳐봐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가'라고 되묻는다. 거기에는 '훔쳐보는 나나 들키면 안될 짓을 하는 당신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자신감마저 숨어 있다.
어떤 면에서 사람의 일상은 거짓말과 비밀 투성이이다. 몇 해 전 미국의 정신과의사 제럴드 젤리슨 박사는 사람들이 평균 8분에 한번씩 거짓말을 한다고주장했다. 은희경의 성장기 소설'새의 선물'은 비밀로 가려진 '숨겨진 나'는 '보여지는 나'와 뻔뻔스럽게도 함께 존재한다고 말한다.
자비심이 결여된 정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역사는 잘 설명하고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은 열등하며, 싫다. 그러니 모조리 없애야겠다'고 생각했고 정직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의 '정직'은 참극이었을 뿐이다. 동생의 도둑질에 분개했던 칭기즈칸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아우를 살해했다. 자신의 의지에 철저하게 충실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은 또 어땠는가.
많은 경우 거짓말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예의에 가깝다. 거짓말투성이인 세상이 끔찍하다면 속내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회 또한 견디기 힘들다. 더구나 '네 비밀을 모조리 밝혀주마'하고 도청기와 몰래카메라를 들이미는 세상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거짓말과 비밀은 인류가 좀더 행복해지기 위해 부여받은 윤활유인 셈이다. '훔쳐보기'와 '훔쳐듣기'는 때때로 순기능적 역할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일상의 윤활유를 닦아내 쇳소리 나게 할 뿐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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