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줄서기
대구시 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최모(45) 약사는 얼마 전 보기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일본인 청년 4 명이 약을 사러 왔는데, 이상하게도 1 명이 약을 살때 나머지 3명은 뒤에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최 약사는 "약국을 연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줄을 서 약을 사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타국에서도 이렇게 질서를 지키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버스로 등교를 하는 김지영(17·대구시 남구 대명동) 양은 매일 아침 버스타기 전쟁에 시달린다. 정류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버스만 도착하면 너나 할것없이 '와'하고 차로 돌진하기 때문.
"힘이 없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보면 지각하거나 아침부터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며 "차례대로 줄을 서서 타면 대기시간이 훨씬 더 짧아질텐데…"라며 김 양은 쓴웃음을 지었다.
2002년 월드컵을 겨냥, 지난해부터 제2건국위원회와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한줄로 서기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기초질서는 앞지르기에 새치기, 버스나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서로 먼저 타려고 밀려드는 등 아직도 한심한 수준이다. 시민의식이 낙제점이고 보니 정부와 대구시 등 행정기관이 벌인 줄서기 운동은 단순히 '생색내기'용으로 전락, 실적은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대대적인 캠페인 덕분에 어느정도 잡혔던 질서가 어느새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렸다.
하루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 대구시내 한 백화점은 얼마전 화장실에 '한 줄 서기 운동' 표어와 함께 문 앞 바닥에 발바닥 스티커까지 붙여 놓았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이 백화점 한 관계자는 "한 줄로 서서 기다리면 왠지 손해본다고 생각해 안 지키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월드컵문화시민운동 대구시협의회 윤병현 과장은 "역이나 은행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한 줄로 서기운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시민들이 공감은 하면서도 막상 실천까지는 연결이 안되는 것 같다"며 "한 줄서기 운동이 기초질서 시민의식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와 각 구청 등 행정기관의 노력이 절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선진국에선 '기초질서를 지키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이며 그 출발은 줄서기'라고 어릴때부터 가르치고 있다"며 "잇단 국제대회를 앞두고 줄서기는 물론 기초질서 준수에 대한 대시민 홍보 및 교육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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