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대표하는 전통 연못인 안압지와 대릉원 연못이 녹조로 신음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오폐수 처리장인지 늪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썩어있다. 역겨운 냄새까지 가세해 모처럼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코를 쥐어잡고 이맛살을 찌푸린다.녹조는 여름철에 질소·인 등 영양물질이 급증하면서 부유성 식물플랑크톤이 일시에 대량 번식해 수면을 뒤덮는 현상. 플랑크톤이 수면을 메우다보니 물 속은 햇빛과 공기가 차단돼 썩기 시작하며, 결국 심한 비린내가 난다. 끈끈한 성질의 녹조가 물고기 아가미에 쉽게 달라붙어 물고기 집단폐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이 죽어버리는 녹조는 벌써 몇 년전부터 경주 안압지, 서출지, 대릉원·오릉·불국사 연못 등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무관심 탓에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철 불청객 녹조가 찾아왔다. 연못 물고기는 숨이 막혀 물 위로 떠오르고, 아름다운 전통 연못을 기대했던 관광객들은 썩은 물만 실컷 구경하고 돌아선다.
예산을 확보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경주시청은 업체들이 공짜로 해주는 실험대상으로 문화유산을 맡기고 말았다. 이래저래 해보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발상이다. 안압지가 누구 집 앞마당 연못인가. 물론 사적지 담당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시 전체가 나서 움직이고, 예산을 결정하는 이들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간파해 갖가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환경운동연합은 서라벌대학 환경산업연구소와 함께 경주 자생 수생식물을 이용해 녹조 주원인인 질소·인 등을 제거하고 문화유적에 어울리는 수생식물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모처럼 시민단체-학계가 지역 문화재에 공동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청과 문화재관리 당국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쪽박을 깨는' 잘못을 범해선 안될 것이다. 적극적인 관심과 행정적 협조가 절실한 마당이다.
경주의 주관심사는 바로 문화재다. 미래 경주의 자래매김은 문화유산으로 가능하다. 민선 단체장이 들어선 뒤 표를 의식한 행정을 펴고 있다. 결국 경주는 문화도시도, 산업도시도 아닌 기형도시가 돼 경쟁력만 곤두박질치고 있다. 수백년 전통의 유림숲이 개발에 밀려난 일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화와 환경 마인드를 고루 갖춘 행정가가 아쉬운 때이다.
사회2부·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