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국가(國家)와 시장(市場)의 힘겨루기 시합으로 보면 대단히 흥미롭다. 중세까지만 해도 시장의 힘이 국가를 압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시장의 논리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18세기 후반으로 보면된다. 자유경쟁에 기초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덕택에 서구는 눈부신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러다가 1차대전 이후 대공황이 닥치고 시장이 마비되자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잠시, 20세기 후반 대량생산을 앞세운 미국의 경제력이 지구촌을 압도하자 그들의 논리인 시장의 힘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 신자유주의를 태동시켰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경제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또다시 '시장이냐 국가냐'를 놓고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어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 그저 망연할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8일 "외환위기 이후 많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정부가 금융기관을 소유하게 됐지만 이는 시장경제 원칙이나 국제적 기준, 금융업이 서비스업이라는 측면에서 비정상적이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 금융기관 매각이 갑자기 급물살을 타게됐다. 이바람에 내년부터 은행의 소유지분 한도가 현행 4%에서 10%(지방은행은 15%)로 확대되고 연.기금이나 재벌계열이 아닌 뮤추얼펀드.보험사.개인투자자 등도 자유롭게 10%까지 은행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등 관련 규제완화 정책안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이 정권의 통치 이념인 '시장경제 창달'이 왜 이 시점에서 새삼 재강조되고 있는가. 이는 국민들이 그동안 '시장의 힘'보다는 '국가의 힘'이 더 강했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넘어 '사회주의'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시장경제를 강조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문제는 시장에 팔려고 해도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출자한 액면가 5천원보다 주가가 훨씬 낮은데 시장에서 인기있을 리가 없다. 물론 정부로서는 공적자금 회수율이 25%에 불과하다는 여론을 의식, 선거를 앞두고 공적자금을 조속히 회수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 기능에만 맡겨서는 안되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이후 금융기관 상당수가 외국에 넘어간 사례를 우리는 남미를 통해서 충분히 알고있다. 부실하면 은행도 팔아야 하는 것이 시장논리지만 우리 국민 특유의 정서상 금융기관이 남의 나라에 넘어가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의 금융기관 조기 매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억지 처분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시장기능을 무시한 '정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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